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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리뷰 : 22R 라스베가스 그랑프리(R) - 사고 쳤다! 그런데 왜 팀이 쳐?F1과 잡담 2023. 11. 20. 15:14
레이스
§ 스타트 이전하늘이 버리다 못해 맨홀뚜껑에게까지 공격받은 사인츠가 P2를 따내고 P12로 내려갔다. 2위 미만 12위 이상 드라이버들은 한 계단씩 올라왔다. 그 외엔 피트레인 스타트나 DNS같은 극적인 사건은 없었다. 한 칸씩 올라온 윌리엄스는 서드 로우를 차지했는데, 2016년 이후 윌리엄스 두 대가 서드 로우를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 스타트 직후
난장판이 벌어졌다. 최상위권에선 스타트가 빨랐던 베르스타펜이 첫 코너에서 르클레르를 트랙 밖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자신도 코스를 이탈했다. 알론소가 스핀, 사인츠는 해밀턴의 옆구리를 받았고, 페레즈는 보타스를 뒤에서 밀었다. 떠밀린 보타스와 스핀한 알론소의 프론트윙끼리 충돌했고, 생존자들이 첫 코너(1-4번)를 빠져나갔다. 버추얼 세이프티 카가 선언됐고, 해제되자마자 노리스가 직선 주로에서 혼자서 스핀, 12번 코너의 런오프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 때 세이프티 카가 선언됐다.
상기한 사고와 연관된 모든 드라이버가 하위권으로 떨어진 가운데, 오콘(P7), 츠노다(P10), 스트롤(P9),피아스트리(P11) 등이 이득을 많이 보고 있었다. 그들 중 소프트 스타트로 잔뜩 이득을 보고 있던 스트롤( P19스타트, 3랩 순위 P9)이 과감하게 피트인해 P15로 피트아웃 했다.역시 같은 전략으로 세이프티카 직전 P10을 달리고 있던 츠노다는 피트인을 하지 않았고, 이 차이는 두 드라이버의 극명한 순위 차이로 이어졌다. 3랩만에 노리스, 사인츠, 알론소가 트랙션을 잃었는데, 이들이 평소에 얼마나 안정적으로 주행하는 이들인지 생각해 본다면, 반대로 노면 상태가 얼마나 무자비했는가 유추할 수 있다.
시작 시점뿐 아니라, 노면 온도가 올라오지 않은 레이스 초반 내내 거의 모든 차가 조금씩 미끄러졌다. 레이스 중반을 넘어서서도 새 하드 타이어를 끼운 랩, 마모가 큰 타이어로 달린 랩에서는 12, 14번 코너의 트랙션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모습이 레이스 끝까지 이어졌다.
§ 중반부
세이프티카가 해소된 후, 러셀, 오콘, 페레즈, 피아스트리, 해밀턴 등이 올라오는 가운데, 그때까지 상위권(P6)을 지키던 사전트가 한 계단씩 양보를 시작했다. 15랩이 되자 르클레르를 제외한 모든 미디엄 타이어의 페이스가 급격히 떨어졌고, 러셀은 3위에서 피트인, 사전트는 9위까지 내려온 채 피트인했다. '르클레르를 제외한 미디엄'에는, 1위 베르스타펜도 있었다. 16랩에서, 르클레르는 베르스타펜을 추월하고 레이스 리더로 올라섰다! 셋업 단계에서 타 팀보다 냉각에 좀더 신경을 쓴 듯, 페라리는 타이어 수명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자랑했다. 게다가 1위를 내주자마자 피트인한 베르스타펜은 5초 페널티도 수행한 뒤 11위로 피트아웃 했고. 르클레르와 2등 사이의 간격은 점점 벌어지기만 했다. 드디어 그에게서 폴투윈의 기운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20랩이 가까워 올수록, 레이스 리더 르클레르와 P2 페레즈의 간격이 조금씩 좁혀졌다. 21랩에 르클레르가 피트인했고, 여기서 작은 사고가 터졌다. 피트스탑에 3.9초가 걸렸다. 레이스 종료 시점에서 보면, 이걸 2.5초 정도로만 해줬어도 페레즈를 안정적으로 앞섰을 것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폴투윈의 향기가 흩어졌다. 원조 '피우향'도 현실이 되기까지 3년이 걸리긴 했다. 어쨌든, 르클레르는 하드를 낀 채 3위로 나와 스트롤 뒤를 달렸다. 그런데, 24랩이 되기 전까지 본격적으로 추격을 하지 못했다. 타이어 수명에서는 이득을 봤지만, 타이어 예열은 상대적으로 느린 모습에서, 페라리가 냉각을 우선시한 세팅을 가져온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페이스가 올라온 르클레르가 스트롤을 추월한 뒤, 레이스 리더 페레즈를 추격하기 시작한 순간,
선두권을 쫓던 러셀과 베르스타펜(P4,P5)이 25랩 14번 코너에서 충돌했다. 위치상으로는 베르스타펜이 뒤쪽이지만, 온보드캠에서는 러셀이 베르스타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듯 라인을 타는 모습이 나왔다. 하지만 내 기준, 이런 판단은 페널티 결정을 보고 그 페널티에 맞춰 근거를 찾았기에 가능한 것이지, 중계 상황을 보고서 즉각적으로 내린 것은 아니다. 페널티 판단은 언제나 어렵다. 이 사고로 인해 베르스타펜의 프론트윙이 깨져 트랙에 나뒹굴었고, 26랩에 두 번째 세이프티카가 선언됐다. 위의 피트스탑 테이블을 보면, 페레즈와 사인츠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 보인다. 저우관위, 알론소 등도 혜택을 봤지만 최종 순위를 본다면 페레즈,사인츠의 이득은 이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론, 2위로 피트아웃한 페레즈의 이득은 10위로 피트아웃한 사인츠의 이득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르클레르는 트랙에 남았는데, 당시에는 합리적으로 볼 여지가 있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이 때 들어갔어야 했다. 우선, 새 하드 타이어가 한 세트 남아 있었다. 페레즈, 베르스타펜과 같은 랩에, 같은 새 하드를 끼웠으면 첫 스틴트처럼 후반에 직선주로에서의 추월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피트인을 하지 않을 근거는 우선 레이스 리더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 새 하드 타이어를 달아 봤자 또 예열하느라 랩타임 손해를 봐야 한다는 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이프티 카가 나와있는 동안, 르클레르의 타이어 온도가 예상보다 더 심하게 떨어져 이 두 가지 의의가 다 바래 버렸다. 타이어 온도로 고생하던 르클레르는 레이스 재개 후 5랩여만에 페레즈에게 추월, 이후 페레즈를 DRS범위 내까지 추격했지만 이젠 베르스타펜의 추격을 받게 됐다. 페레즈를 추월하고 1위로 올라섰지만, 베르스타펜이 페레즈와 자리를 바꿔 르클레르를 따라왔고, 37랩에 추월당했다. 이후 르클레르는 베르스타펜의 페이스를 따라가지 못했다. 새 타이어였으면 그나마 레이스 말미에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 후반부
40랩이 지나자 베르스타펜을 따라가지 못하는 르클레르의 목표는 2위 수성으로 바뀌었고, 뒤따라오는 페레즈의 압박을 쉽게 떨쳐내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43랩 12번 코너에서 휠락이 걸린 르클레르는 페레즈에게 2위를 양보해야 했다. 물론 이 실수가 없었어도 추월을 당할 페이스긴 했지만, 그랬다면 재추월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동시에, 그랬더라도 어차피 1위를 노릴 순 없었을 것이다. 이후 르클레르는 레이스 종료까지 페레즈를 물고 늘어졌는데, 이 추격전이 레이스 최후반의 주인공이 되었다. 르클레르는 페레즈 뒤 DRS 범위 내에 계속해서 머물렀으나, 직선에서 따라잡고 코너에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랩마다 0.05초를 줄이는 듯한 꼬리잡기가 이어지자, 마지막 랩에서 레드불은 다급하게 베르스타펜에게 SOS를 보냈다. 페이스를 늦춰 페레즈를 끌어주라는 팀 오더였다. 베르스타펜은 오더를 받고 속도를 늦췄지만, 토가 충분하지 않았다. 마지막 14번 코너에서 르클레르는 페레즈를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페레즈가 라인을 닫으려는 움직임 없이 너무 쉽게 양보한 감이 있었는데, 포디움 인터뷰에서 페레즈가 밝히길, 르클레르가 그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고 했다.
포디움권 외에선, 스트롤과 오콘의 분전이 눈에 띄었다. 둘 다 사고의 여파를 잘 피해, 최대한의 이득을 봤고, 그렇게 차지한 위치에서도 두어 계단을 올라가며 최종 순위를 만들어냈다(오콘P4, 스트롤 P5). 이 과정에서 오콘은 가슬리와 또또 영혼의 배틀을 펼쳤다. 실력도, 성향도, 나이도, 심지어는 국적도 같거나 비슷한 두 드라이버는 올 시즌이 끝날 때까지 바퀴를 맞부딪칠 계획인 것 같다. 가슬리는 무리한 원스탑으로 인해 페이스가 떨어져 포인트를 얻지 못했다.
그 뒤는 사인츠였는데, 스타트가 최악이었다지만 똑같이 최악의 스타트를 한 페레즈는 포디움을 달성한 반면, 사인츠는 6위에 머물렀다. 레이스 초중반 '사전트레인'에 갇혀 시간을 허비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7위는 해밀턴이었다. 직접 사고를 당하고, 남의 사고로 인한 데브리에도 피해를 입고, 타이어 펑쳐도 겪은 뒤 우여곡절 끝에 7위가 되었다. 러셀은 마지막 랩에 오콘을 추월하고 P4로 골인했으나, 베르스타펜과의 사고에서 5초 패널티를 받아 8위로 내려갔고, '포인트 공무원' 알론소가 9위, 무려 43랩에 의아한 피트스탑을 한 피아스트리가 10위였다.
피아스트리는 왜 43랩 피트스탑을 했을까? 피트인 하기 전 그의 순위는 P4였고, 앞 차(페레즈,르클레르)와의 격차는 무난하게 벌어지고 있었지만, 뒷 차(오콘)와의 간격이 좁혀지는 속도가 그리 급격하진 않았다. 1.9초짜리 슈퍼패스트 피트스탑을 하고 P11로 나왔지만, 곧바로 알본에게 그 자리를 뺏겼다. 레이스가 일곱 랩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타이어 올도를 올려 봤자 단 두 대(가슬리)를 추월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냥 버텼으면, 두세 계단 내려앉을 수는 있었어도 10위까지 내려갔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상황이 무난하지 않았으리란 심증은 있지만, 공식적인 발표가 있기 전까진 알 수 없다.
§ 정리
클러치 상황에서 또 한끗의 아쉬움을 보이긴 했지만, 페레즈가 결국 포디움 피니쉬로 클래스를 증명해냈다. 포디움 뿐만 아니라, 드라이버 챔피언십 2위를 확정지었다는 점에서 그의 '클래스 증명'은 더욱 확실히 완료됐다. 못할 때 파격적으로 못해서 그렇지, 레드불 역대 최고의 윙맨은 그가 맞다. 레드불 역사상 최초로 드라이버 챔피언십 원-투를 달성한 시즌의 세컨드 드라이버, 세르히오 페레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년 시트가 안전하리란 뜻은 아니다.
르클레르는 또 폴투윈에 실패했다. 타이어 전략이야 결과론으로 비판하기 어렵겠으나, 피트스탑 실수만큼은 오롯이 팀의 잘못이다. 그만큼 휠락은 본인 잘못이 훨씬 크다. 하다 못해 사인츠가 맨홀뚜껑 테러만 안 당했어도 상위권에서 레드불을 견제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요소가 황금 밸런스를 이룬 채 그의 폴투윈을 막고 있다. 그 요소란, 올 시즌 팀의 실력, 본인의 실력, 팀의 운, 본인의 운이다. 그래도 2위라도 해서 포인트를 많이 벌었다. 오늘 레이스 결과로 페레즈의 2위, 해밀턴의 3위가 결정됐지만, 4위 결정전은 더욱 치열해졌다. 페라리 두 명과 알론소, 노리스가 4위 자리를 두고 경쟁중인데, 르클레르는 188점으로, 가장 고지에 서있는 사인츠, 알론소보다 12점이 모자라다. 최종전인 아부다비 그랑프리가 틸케 드롬에서 펼쳐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페라리로 12점차 뒤집기가 쉬워 보이진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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