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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1 그랑프리 리뷰 : 21R 상파울루 그랑프리(SQ,SR,R) - 왜 상파울루 그랑프리는 1년에 1번밖에 없는가?
    F1과 잡담 2023. 11. 6. 17:07

     하루 새 페널티가 부과되어 스타팅 그리드가 바뀌었다. 러셀, 오콘, 가슬리가 임피딩으로 인해 2그리드 페널티를 받아 그순위가 조정되었다. 하지만, 눈앞에 놓인 스프린트 슛아웃과 스프린트 레이스와 당장은 무관했다. 스프린트 슛아웃은 또 한 번의 퀄리파잉이긴 하지만, 이전까지의 사례를 통해 봤을 때 하루 사이에 분위기가 크게 바뀌는 경우가 잦았다. 애스턴마틴이 P3,P4를 차지한 다음 날이지만, 어제에 이어 계속해서 선전하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특히, 비 예보가 전혀 없었기에 전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기대됐다.

     

    1. 스프린트 슛아웃

     

    미디엄을 끼고 진행되는 SQ1은 전반적으로 페이스가 느린 가운데, 많은 팀들이 피트인을 줄이고 쿨다운랩-플라잉랩을 반복하는 식으로 일정을 소화했다. 세션 길이는 12분으로 짧은 데다, 트랙 길이는 4.3km로 역시 짧아서 한 번 피트인을 잘못 하면 트래픽에 갇혀버릴 위험이 컸다. SQ1에서 주목할 점은 애스턴마틴이었는데, 어제의 페이스가 꿈이었던 것처럼 하루 새 너무나 느려졌다. 가능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셋업과 미디엄 타이어의 궁합이 안 맞았을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인다. 그러다, 사고가 터졌다.

     

    오콘이 2번과 3번 코너를 잇는 '쿠르바 두 솔(태양의 커브)'에서 알론소의 왼쪽 앞바퀴를 치고 그대로 스핀하며 방호벽에 처박혔다. 사고가 나자마자 '이디엇 페르난도'를 내뱉었지만, 의아하기도 했다. 누가 봐도 오콘이 미끄러졌고, 카운터스티어링을 하다가 오버스티어가 나서 트랙션을 잃은 모습이 온보드캠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고 순간이야 워낙 극한 상황이니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다지만, 이후 인터뷰에서도 '그립을 잃은 적 없다'는 말을 남긴 점은 또 한 번 의문을 자아냈다. 그럼 온보드캠에 잡힌 카운터스티어는 카운터가 아니라 정방향 스티어링이었단 걸까? 그것 때문에 알론소와 충돌했는데?

     

    아무튼, 이 사고 때문에 세션 종료 33초를 남기고 레드 플래그가 선언됐고, SQ1이 끝났다. 하루 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 스트롤을 비롯해 다섯 대가 떨어졌고, 알론소와 애스턴마틴에게는 미션이 부여됐다. SQ2가 시작되기 전까지 알론소의 차를 고쳐야 하는 미션이었다. 레드 플래그 상황을 정비하느라 20분정도가 추가로 주어진 점은 다행이었지만, 척 보기에 차량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알론소는 세션 종료까지 수리를 하지 못해, 랩타임을 작성하지 못했다.

     

     SQ2가 예정보다 20분가량 늦게 시작된 덕에, 그 동안 노면이 쨍쨍한 햇빛을 그대로 받아 온도가 올라갔다. 그만큼 타이어 온도 차이에 의한 격차는 줄어들었고, 트랙 에볼루션은 가속화됐다. 이 상황에서, 마지막 플라잉랩 타이밍을 빠르게 잡은 드라이버들이 상대적 손해를 봤다. 특히 하스는 SQ1에서 둘 다 10위 안에 드는 호성적을 냈음에도 SQ2에서는 둘 다 Q3진출에 실패했다. P10 츠노다와 각각 0.051초(마그누센), 0.076초(휠켄버그) 차이였다.

    애스턴마틴은 인간 장벽까지 세워가며 차를 고쳐 봤지만, 결국 수리에 실패했다.

     

     SQ3은 레메페맥 5팀으로 구성됐다. 레메페맥은 올 시즌 빅4이니 그렇다 치는데, 나머지 한 팀이 알파타우리 2대였다. 심지어, 그냥 알파타우리도 아니었다. 바로 하루 전 Q1에서 두 대가 다 탈락한 알파타우리였다. 그 팀, 그 드라이버, 그 차가 하루만에 Q3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도 놀라운데, P6과 P8을 차지했다. P7은 르클레르, P9는 사인츠였다. '알페알페'를 한 것이다!

     

     극도로 짧은(8분) 세션 시간, 자칫하면 남 좋은 일밖에 안 되는 트랙 에볼루션 등 다양한 상황을 고려하여, 모두가 단 한 번 플라잉랩을 소화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드디어 페레즈가 베르스타펜과 붙는 데 성공했다. 그게 프론트 로우는 아니었지만, 뭐 어떤가. 노리스는 스냅을 한 번 겪고도 폴 포지션을 따냈고, 성능순으로 레-맥 다음인 메르세데스가 그 뒷 그리드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앞서 말했듯 '알페알페'였고, 10위는 가장 먼저 달린 피아스트리였다. 하지만 전적으로 트랙 에볼루션 탓을 할 순 없는데, 노리스는 앞에서 두 번째로 달렸다. 그렇다고 피아스트리의 토잉을 받을만한 거리는 또 아니었기에, 이 결과는 노리스가 잘 달리고, 피아스트리가 못 달렸기에 발생한 것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다.

     

     과연 노리스는 후배 피아스트리도 기록한 첫 우승을 달성할 수 있을까? 비록 스프린트 우승이라도 말이다. 하지만 전망은 역시 그리 밝지 않다. 바로 옆과 뒷 그리드에 포진하고 있는 레드불 때문인데, 일단 SQ3에서 2위와의 랩타임 차이도 0.061초에 불과했다. 사실상 성능이 같다는 의미다. 올 시즌 적당히 6그리드 내에서만 시작한다면, 언제나 우승 확률이 가장 높은 건 베르스타펜이다. 그나마 1그리드에 르클레르의 페라리가 서있을 때보다는, 노리스와 맥라렌의 대항력이 클 것이기에 두 드라이버의 배틀을 기대해볼 만하다. 각성의 조짐을 보이는 페레즈와 만나버린 메르세데스의 페이스도 지켜볼만 할 것이다. 업데이트에 대한 메르세데스 드라이버들의 만족도는 상당한 가운데, 성능도 따라줄 것인지, 페레즈라는 좋은 시험대를 만났다. 롱런이 구리기로 유명한 페라리는 과연 알파타우리와 붙어도 여전히 구릴 지,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다.

     

    1. 스프린트

     

    스타팅 그리드만 보고 순위를 예측해 보자. 아마 3위부터 의견이 갈릴 것이다. 하지만 1위와 2위는 다른 예측을 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1위 베르스타펜, 2위 노리스다. '기운'부터 그러하다. 각각 '유관기운' '무관기운'의 주인공들이다. 농담을 거두고 말하면, 차량 성능과 올 시즌 크루징 경험의 차이가 근거다. 실제로 1, 2위는 이 예상을 그대로 따라갔다. 그 다음부터는 순위가 요동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추월이 끊이지 않는, 그야말로 가장 '취지에 부합하는' 스프린트였다.

     

     하스 두 대와 P20 사전트를 제외한 모두가 소프트 타이어를 끼고 나왔다. 스타트 직후, 베르스타펜은 첫 코너에서 노리스를 어렵잖게 추월했고, 페레즈는 메르세데스에게 어렵잖게 추월당했다. 베르스타펜의 반응속도가 눈에 띄었는데, 스타트 반응속도가 무려 0.15초로 0.29초의 노리스보다 0.14초 빨랐다. 인간의 반응속도 한계가 0.1초 정도로 알려져 있고, 그마저도 청각에 의한 반응보다 시각에 의한 반응이 더 느린 것을 감안하면 이것보다 더 빠른 반응은 거의 불가능하다. 첫 랩에서 러셀은 노리스마저 추월하며 2위로 올라섰고, 베르-러셀-노리-해밀-체코로 P1-P5가 형성됐다. 이 뒤로는 배틀의 연속이었다. 3랩 말미에 해밀턴이 노리스와 1초 이상 벌어지자,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페레즈가 해밀턴을 추월, 4랩 말미에 러셀이 베르스타펜과 1초 이상 벌어지자 노리스가 러셀을 추월했다. 러셀은 10랩 첫코너에서 페레즈에게까지 추월당하며 4위로 내려왔다. 메르세데스 두 대가 레이스 초반에 비교적 쉽게 추월을 허용한 모습인데, 업데이트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메르세데스의 고점은 역시 '레맥'에 미치지 못함을 증명하는 듯했다.

    8랩에 추월당하는 메르세데스 러셀. 이 이후 메르세데스는 포디움권과 경쟁하지 못한다.

     

     6위권 밑에서는 공교롭게도 '알페알페' 스타팅 그리드가 '페알페알' 순서로 바뀌었다. 첫 코너에서 페라리 듀오가 각자 한 그리드 앞에 있던 알파타우리 듀오를 앞질렀는데, 성능 탓을 할 수도 없는 스타팅 직후였다. 그 덕에 츠노다는 르클레르(P6), 리카도는 사인츠(P8)을 추격하는 그림이 펼쳐졌다. P10 자리는 피아스트리가 제자리를 지켰다. 알파타우리 듀오는 계속해서 페라리의 뒷쪽 DRS레인지 안에 머무르며 호시탐탐 추월 기회를 노렸는데, 리카도는 실제로 두 번 추월에 성공했으나 그 과정에서 레이싱 라인과 탈출속도를 희생시키는 바람에 두 번 다 재추월을 당했다. 14랩에서는 재추월을 당하는 과정에서 라인이 더욱 흐트러져 피아스트리에게 P9를 뺏기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사인츠가 DRS존에서 무리하게 리카도를 방어하는 대신, 레코드 라인에 집중하며 격차를 최대한 좁히고, 백스트레이트에서 DRS를 써서 재추월하는 전략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메인스트레이트 끝에서 추월, 백스트레이트 끝에서 재추월

     

     P10까지 순위가 대충 베르-노리-체코-메르세데스-페알페알-피아(P10두고 리카도-피아스트리 배틀)로 고정된 10랩 이래, 알론소와 스트롤이 순위를 올리며 17랩, P11알론소, P12 스트롤이 되었다. P9 이하는 포인트가 없기에 엄밀히 따지면 그리 중요한 배틀이 아닐지 몰라도, 이 지점이 흥미진진한 관전포인트가 되었다. 방송 카메라도 자주 이곳을 향했다. P9 피아스트리부터 P12 스트롤까지 네 대가 모두 DRS레인지 안에 붙어서 달렸기 때문인데, 특히 P10 리카도는 피아스트리의 0.2-0.4초 뒤에서 수 랩을 따라붙으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이 페이스가 유지하는 것이 고무적인 이유는, 리카도가 사인츠와의 배틀에서 더티 에어를 마시며 이미 적잖은 손해를 본 이후였기 때문이다. 결국 22랩에서 리카도는 피아스트리를 추월했다. 그리고 P9, 노 포인트로 골인했다.

     

     레이스 종반, 타이어 수명이 다한 자들과 수명이 남은 자들이 마지막 배틀을 벌였다. 22랩의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르클레르는 해밀턴을 넘어섰고, 다음 랩 같은 자리에선 츠노다 역시 해밀턴을 추월했다. 츠노다가 해밀턴을 추월했다! 같은 스틴트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 지 처음 깨달았다. 상기했듯 리카도가 피아스트리를 추월한 것도 같은 시점이었고, 마지막 랩에서는 알론소가 피아스트리를 순간 추월했다가 재추월을 당했다. 리카도는 마지막 랩의 마지막 코너까지 P8 사인츠를 추격했지만, 사인츠가 해밀턴의 DRS레인지에 들어가는 바람에 추월을 하진 못했다. 그렇게, 최종 순위가 결졍됐다.

     

     인상적인 것은, 페라리가 메르세데스보다 타이어를 잘 관리했다는 점이다. 20랩이 넘어가자 해밀턴의 페이스가 너무나 느려졌고, 마지막 랩에서는 거의 반 랩만에 사인츠에게 0.4초를 따라잡혔다. 그나마 알파타우리에게 추월당한 것은, 그들이 새 타이어를 끼고 나왔으니, 헌 타이어를 끼고 나온 메르세데스 입장에서 변명이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페라리는 타이어 상황도 똑같았다. 물론 러셀 쪽은 해밀턴보다 페이스를 잘 유지한 걸 보니 상황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있어 보이지만, 상대가 타이어 갈아마시기로 유명한 페라리임에도 추격과 추월을 허용한 것은 팀에게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 이번 시즌이야 이미 끝물이니 넘어간다 쳐도, 지금 메르세데스는 내년 시즌에 쓸 파츠를 일부 달고 레이스를 하는 중이다.

     

     '체코의 부활'도 놀랍다. 오랜만에 올 시즌 레드불의 위용에 걸맞은 순위를 달성했다. 노리스를 따라가진 못했지만, 그걸 성공할만한 페이스를 보여준 드라이버는 베르스타펜밖에 없었으니 전혀 흠이 아니다. 특히, P3에서 시작해 P5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메르세데스 두 대를 잡고 올라왔는데, 내년 시즌을 바라보는 업데이트를 장착한 메르세데스에게 시사하는 바가 컸다. 또, 드라이버 챔피언십 순위 경쟁을 하고있는 해밀턴과의 격차를 벌리는 데도 성공했다. 페레즈는 이번 포디움을 계기로 드디어 각성할 수 있을까? 올 시즌 남은 레이스는, 당장 다음날 있을 상파울루 그랑프리 레이스를 포함해 단 세 번이다.

     

    2. 레이스

     

      레이스 시작도 전에 페라리와 티포시들에게 대형 악재가 터졌다. 르클레르가 포메이션 랩을 돌다가 리타이어한 것인데,  공식 DNS로 기록되었다. 페하두라(6-7번 코너)를 돌다가 갑자기 유압 계통에 문제가 생기며 조향을 잃고 방호벽에 부딪친 것이다. 팀 라디오로 "Why am I so unlucky?", 즉 "난 왜 이리 운이 없냐."는 한탄을 하는 장면이 방송을 탔는데, 자신의 헬멧 이마 부분이나, 레이싱 슈트의 가슴에 박힌 엠블렘이 어느 팀의 것인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기를 바란다. 답은 거기에 있다. 그렇게 페라리는 2그리드에서 스타트하는 드라이버를 잃었고, 르클레르는 팀메이트와의 포인트 격차를 줄일 기회를 또 놓쳤다. 카타르에선 사인츠를 DNS시키더니, 얼마 되지도 않아 페라리 특유의 '접레이스'가 발동했다.

    Why am I so unlucky?

      남은 19대는 스타팅 그리드로 복귀해, 크로프티의 Lights out을 받았다-가 멈췄다. 스타트 직후 알본이 휠켄버그와 접촉, 트랙션을 잃으며 마그누센을 들이받아 같이 방호벽에 처박히는 사고였다. 이 과정에서 마그누센의 차가 피아스트리의 엔진룸을 건드렸고, 알본의 차체에서 튕겨져 나온 타이어가 리카도의 리어윙을 때려, 리어윙이 부서졌다. 세이프티 카가 발동했고, 마그누센과 알본은 리타이어, 피아스트리와 리카도는 점검을 위해 피트인을 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레드 플래그가 선언됐다. 레드 플래그는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하필 시점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면서 피아스트리와 리카도는 큰 손해를 보게 됐다. 피트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레드 플래그가 선언됐기 때문에, 다른 차들보다 한 랩 뒤처지게 된 것이다. 물론 레드 플래그가 없었다면 아예 리타이어를 했을 가능성이 높으니 오히려 좋다고 볼 여지도 있지만, 포인트피니쉬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유일한 가능성은 세이프티 카 재출동과 언랩 선언인데, 그마저도 최대한 빨리 나와야만 경쟁이 가능했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리스타트에서는 알론소가 해밀턴으로부터 3위를 되찾아 왔다. 반면 스트롤은 또 2순위를 잃으며 7위로 내려갔다. 3위에서 스타트 두 번만에 7위까지 내려간 셈인데, 스타트 실수야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지만 두 번 연속은 약간 아쉽다. 다행인 건 이게 스트롤의 마지막 실수였다는 점이다. 

     

    1위 베르스타펜, 2위 노리스, 3위 알론소가 시작부터 치고나간 가운데, 첫 스틴트가 극명하게 갈렸다. 가장 먼저 피트인한 오콘은 14랩, 가장 늦게 피트인한 베르스타펜-노리스는 27랩으로, 소화 랩수가 거의 2배에 육박했다. 이 차이 때문에 오콘은 보기드문 쓰리스탑(레드 플래그 제외)을 해야 했다. 3-5그리드에서 시작한 메르세데스는 첫 스틴트 말미에 5-6위를 달렸는데, 해밀턴은 스타트에서 알론소에게 밀려났고, 한참 '해밀턴 트레인'을 몰다가 페레즈에게 4위 자리를 내주고는 피트인 했다. 페레즈(리스타트 시작점 P6)가 해밀턴(리스타트 시작점 P3)을 앞질렀다는 것은, 러셀은 진작에 앞질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페레즈가 러셀을 앞지른 건 11랩이었다. 18랩만에 페레즈가 메르세데스를 서열정리 해버렸다. 남은 레이스가 메르세데스에게 험난할 것이라는 점을 예고하는 스틴트였다.

     

     해밀턴 피트인, 다음 랩에 러셀까지 피트인 함으로써 해밀턴 트레인 상황이 완전히 해소됐고, 페레즈는 노리스, 베르스타펜을 제외한 누구와도 경쟁이 가능한 속도를 보여줬다. 드디어 체코가 돌아온 것일까? 일단 레이스 내내 보여준 모습은 그 시절 '프라임 체코'와 흡사했다. 피트스탑 직후, 해밀턴에게 추월을 허용하긴 했지만 타이어 온도가 올라온 한 랩 뒤에 곧바로 순위를 회복하며 해밀턴을 다시한번 서열정리했다.

     

     두 번째 스틴트에선 중위권의 순위 변화가 눈에 띄었다. 스트롤이 메르세데스 두 대를 제치고 5위로 올라왔으며, 해밀턴과 러셀은 6-7위에서 서로의 앞뒤에 붙어 달렸다. 당연히 7위 러셀은 더티 에어를 꽤 뒤집어쓰며 차의 컨디션을 희생했다. 어느 정도 불가피한 면이 있었는데, 간격을 벌리자니 8위 사인츠의 속도가 심상치 않았고, 팀 오더로 자리를 바꿔 봐야 5위 스트롤과의 페이스 차이가 명확해 어쨌거나 한 대는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엔 러셀이 똥물을 뒤집어 썼을 뿐이었다. 그러던 와중 저우관위가 화면에 잡히지 않은 채 네 대째 리타이어를 기록했다.

     

     스틴트가 끝나갈 무렵, 메르세데스 듀오는 사인츠에게 순위를 양보하며 7,8위로 내려왔고 9위 가슬리에게도 추격을 받게 됐다. 결국 러셀은 가슬리에게까지 순위를 빼앗긴 다음 쓸쓸히 피트인을 했다. 같은 전략으로 달리던 해밀턴은 다음 랩에 피트인 했다. 첫 스틴트를 13위로 들어온 츠노다는 꾸준히 순위를 올리며 10위로 달리고 있었고, 레드 플래그 상황에서 스타팅 미디엄 타이어를 소프트로 갈고 나온 사전트는 고민할 것 없이 계속 소-소-소 컴파운드를 이어가며 11위까지 올라왔다. 같은 소소소 작전을 펼친 건 휠켄버그였는데, 새 소프트가 없어 결국 같은 스틴트에서 사전트를 따라잡진 못했다.

    나란히 달리다 사인츠에게 둘 다 따라잡힌 메르 듀오

     

     마지막 스틴트의 주인공은 페레즈와 알론소였다. 둘 다 비교적 빠르게 피트스탑을 하고 소프트 타이어로 25랩 가량을 달려야  하는 상황, (1,2위, 츠노다를 제외하고) 사실상 모두가 마지막 스틴트에 돌입한 54랩부터 P4 페레즈가 DRS거리 내에서 P3 알론소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이 압박이 레이스 종료까지 계속됐다. 보기 쉬운 광경은 아닌데, 기술적으로도, 전략적으로도 그렇다. DRS범위 내에서 추격이 오래 지속될수록, 더티 에어에 의한 피해가 누적되어 페이스는 더욱 떨어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차가 못 버티게 되니 15랩 이상 따라붙는 걸 보는 건 쉽지 않다. 만약 그게 가능한 차라고 해도, 그렇게 따라붙는 것보다 약간 거리를 두다가 ERS를 모아 한 번에 역전하는 게 확률도 높고, 더티 에어 위험도 적어서 잘 시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페레즈는 시도했다. 

     

     직선에 약하고 코너에 강한 애스턴마틴의 특성 상, 페레즈가 두 개의 스트레이트에서 거리를 좁혀 놓으면 나머지 구간에서 알론소가 다시 거리를 벌리는 구도가 10랩 이상 지속됐다. 첫 코너에서 한 번 휠투휠이 성사되기도 했지만, 알론소 입장에서 막기 어려운 시도는 아니었다. 0.3에서 0.8초 가량의 차이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던 상황, 60랩이 넘어가자 거리를 줄여도 0.3초대로 진입하는 경우가 없어졌고, 이들의 배틀은 이렇게 끝나는 것 같았다. 70랩까진.

    그런데 70랩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71랩을 돌면 레이스가 끝난다. 그랬는데, 70랩에 돌입하는 메인 스트레이트에서 드디어 페레즈가 알론소를 앞질렀다. 타이어가 갑자기 좋아질 리는 없으니 변수는 ERS였을 것으로 보인다. 몇 랩 동안 참고 참으며 모아 온 배터리를 전부 소모하며 알론소의 앞으로 나선 것이다. 페레즈는 70랩의 백스트레이트에서도 3위 자리를 지켜냈고, 바로 뒤에 알론소를 단 채 마지막 랩에 돌입했다. 한 랩, 그것도 타이어 상황을 감안하면 단 두 곳의 추월 포인트만 틀어막으면 페레즈는 정말 오랜만에 포디움에 설 수 있었다. 하지만, 포디움에 대한 집념은 알론소도 밀리지 않았다. 마지막 포디움 기록으로 치자면 오히려 알론소가 더 오래됐다(알 14R 2위, 페 15R 2위). 메인스트레이트에서 격차를 좁힌 알론소는 쿠르바 두 솔을 빠르게 탈출하며 백스트레이트에서 페레즈를 다시 앞지르는 데 성공했다. 페레즈도 끝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체커기를 받기 직전까지 DRS를 열고 마지막 재재추월을 노렸고, 아주 가까이 따라붙었다. 0.053초 차이였고, 추월에는 실패했다.

    체커기 직전까지 배틀을 멈추지 않은 두 베테랑

     

    3. 후기

     

     올 시즌 싱가포르 이래 최고의 레이스였다. 특히 퀄리파잉부터 이변이 속출하더니, 스프린트와 본 레이스를 막론하고 끊임없이 추월이 일어났다. 페레즈와 애스턴마틴이 긴 잠에서 깨어났고, 당장 지난 그랑프리에서 발군의 타이어 관리능력을 보여줬던 해밀턴과 메르세데스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주며 침몰했다. 해밀턴은 '이 차를 그만 탈 수 있게 빨리 시즌이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러셀은 별 말은 안했지만, 레이스 후반 조용히 리타이어했다. 그래서, 오늘 접레이스를 한 페라리는 오히려 메르세데스와의 컨스트럭터 포인트 격차를 줄여 버렸는데, 이걸로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의 점수 차이는 20점이 되었다. 그랑프리 두 개에 20점이다. 반면 애스턴마틴을 멀찍이 따돌릴 것만 같았던 맥라렌은 P3,P5를 기록한 애스턴마틴에게 다시 추격을 허용했다. 이들 간의 차이도 21점이다. 물론 페라리보다는 애스턴마틴의 역전 가능성이 좀 낮아 보이지만, 이번 선전으로 스트롤이 탄력을 받는다면 가능성은 부쩍 늘어날 것이다.

     

     드라이버 챔피언 순위도 막판까지 안개속일 듯하다. 이번 그랑프리에서 페레즈가 해밀턴에게 크게 승리하며 2위 자리를 굳힌 듯하지만, 반대로 3위 자리는 더욱 치열해졌다. 해밀턴은 힘이 빠졌고, 알론소, 노리스는 힘이 넘치며, 사인츠와 르클레르도 언제든 포디움에 갈 수 있다. 시즌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오히려, 시즌 끝이 다가올수록 더욱 이목이 집중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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