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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1 그랑프리 리뷰 : 21R 상파울루 그랑프리(FP,Q) - 흑마술은 존재한다.
    F1과 잡담 2023. 11. 5. 15:46

      드디어 백투백투백 레이스의 마지막 그랑프리다. 지난 포스팅에서 '북중미 3연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틀렸다. 미 대륙 3연전이라고 표현을 고쳐 놨다. 멕시코 시티 그랑프리가 오랜만에 별 탈 없이 마무리된 가운데, 휴식기 뉴스 또한 유의미한 건 없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별 탈'이란, 리타이어 후 부활이라든지, 타이어 수명 제한, 드라이버들의 탈진이라든지, 플랭크 마모 규정 위반 실격 같은 것을 의미한다.

     

    1. 휴식기 소식

     

     뉴스라 하긴 뭐하지만, 패덕 루머에 관해 다시 말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윌 벅스턴(본능의 질주 기자 아저씨)과 알베르트 파브레가라는, F1기자들 중 인지도 최상위를 다투는 두 인물의 트위터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그 이후 며칠간 아부다비GP의 취소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F1에서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다. 그런데, 기자들이 말하던 루머가 아부다비GP 얘기가 맞을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솔직히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파민에 중독된 나는, 뭔가 더 재미있고 충격적인 뉴스를 원한다.

     

    2. 서킷 정보

     이름은 '아우토드로모 호세 카를로스 파시'다. 아우토드로모는 서킷이라는 뜻이니, 호세 카를로스 파시 서킷이다. 당연히 사람 이름이다. 첫번째 서킷 특성으로는 고지대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직전 멕시코 시티 그랑프리가 워낙 규격 외 고지대여서 빛이 바랜 감이 있지만, 원래 고지대 하면 연상되는 트랙은 오랫동안 이곳이었다고 한다. 코너별 특징을 정리하기 전에 짚어야 할 점이라면, 기상 상황이 급격하게 변한다는 것이다. 해안가에 위치해서 구름이 빠르게 형성되며, 거기다 고지대라는 특성이 더해지니 푄 현상 같은 일종의 기상현상도 잦아, 날씨가 변덕스럽다. 2003년, 2012년 레이스에서 이 날씨 변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DRS존은 두 곳이며, 고저차가 43m 가량으로 아주 심한 곳이다. 차 바닥 대미지, 특히 플랭크 마모 실격이 나온 이상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특징이다. 2번 코너 'S 두 세나(세나S)'는 무려 12번 코너부터 안 써온 왼쪽 타이어 그립을 시험하는 곳이며, 이곳을 탈출하자마자 가속을 최대한 빨리 시작해야 랩타임을 줄일 수 있다. 동시에 S자 코너이기에 레이싱 라인은 매우 좁고, 따라서 사고 위험도 높아, 공략이 아주 어렵다. DRS존이 끝난 다음 코너인 4번 코너도 좋은 추월 포인트로, 코너가 완만하고 넓어 다양한 라인을 그릴 수 있다. 이후엔 페하두라, 핑에리뉴, 비코데파투, 메르굴류 같은 복합굴절 코너를 지나게 된다. 생긴 대로 중저속 주파성능을 시험하는데, 특히 6번부터 10번까지는 내리막, 10번에서 11번 사이는 약간의 오르막, 11번에서 12번은 다시 급한 내리막이어서 코너탈출 속도를 컨트롤하기 어렵다. 여기서 최대한 감속 없이 통과를 한 다음, 13번 코너 융싸웅을 돌면 그 이후로는 풀쓰로틀 가속 구간이다. 당연히 13번 코너를 빠르게 도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

     

     타이어 부담이 심한 곳은 아니다. 그렇다고 멕시코시티만큼 부담이 없진 않은데, 대략적으로는 미국 오스틴의 COTA와 멕시코시티 에르마노스 로드리게스 서킷의 중간 정도 되어 보인다. 미국에선 모든 팀이 투스탑을 안정적으로 가져간 가운데, 이곳에서도 극단적인 전략이 아닌 한 투스탑이 평균이 될 것으로 보인다.

     

    3. 연습 세션

     

     

     또 스프린트가 있고, 또 FP1이 유일한 연습 세션이다. 때문에 차라리 순위표가 뒤집혔으면 더 그럴듯해 보일 지경으로 이상한 점이 많지만, 큰 의미는 없다. 대부분 25랩 이상을 소화한 가운데,휠켄버그의 소화 랩수가 19랩에 그친 점이 눈에 띈다. 랜도 노리스와 타이어끼리 접촉했고, 4번 코너의 연석을 밟은 뒤 차량에 문제가 생기며 정비 시간을 거쳐야 했다. 전반적으로 다운포스와 공기 밀도가 낮고, 이 날 트랙 위의 먼지가 많았기에 코스이탈 맛집인 4번 코너에서 이탈이 자주 발생했으며, 휠락과 오버스티어 스냅이 자주 관측됐다. 윌리엄스의 사전트, 페라리의 사인츠 등 만성적인 다운포스 부족을 겪는 팀 뿐 아니라, 피아스트리도 피트레인 진입에서 휘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퀄리파잉과 레이스에서는 누가 어떤 지점에서 휠락이나 스냅을 겪을지가 하나의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4. 퀄리파잉

     

     데이터 분석 결과, 맥라렌과 메르세데스의 페이스가 페라리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건 당연한데, 애스턴마틴도 페라리를 앞질렀다. 하지만 숏런에 관한 한 벌써 몇 라운드째 도가 튼 모습을 보이는 페라리이기에, 모든 팀에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이라는 말을 할 만한 근거가 충분히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애스턴마틴이 상위 그리드를 노릴 만한 성능을 보여주는 점이 더욱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날씨 예보도 불안정해서, 비가 올 지 아닐지, 비가 온다면 언제일 지도 Q1 시작 시점에서는 알 수 없었다. 불안한 변수를 안고, 드라이버들이 Q1에 나섰다. 

     

     Q1에서 1등과 20등 기록 차이는 1.1초가 채 되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다소 서둘러 랩타임을 찍었는데, 역시 불확실한 비 예보 때문이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마른 노면에서 달린 기록을 따라잡는 건 불가능하다. 그 이전까지는 트랙 에볼루션이 있기 때문에, 플라잉랩 골인과 동시에 비가 내리는 게 이론상 최고의 타이밍이지만, 그 시간을 정확히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니 모두가 최대한 많은 랩을 빠르게 소화하는 작전을 소화했다. 결국 세션 종료 2분여를 남기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많은 드라이버들이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이 와중에 베르스타펜은 피트레인에서 앞 차들을 추월하며 일찍 트랙에 나가, 혼자 기록 경신에 성공했다. 월챔의 '짬바'를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반면 알파타우리는 지난 대회 선전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둘 다 'Q1딱'을 하고 말았다.

    Q2는 시작과 동시에 비와의 전쟁이었다. 이미 가시거리 내에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고, Q1말미부터 빗방울이 떨어졌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바람도 거세졌다. 모두가 첫 플라잉랩을 빠르게 소화했고, 계속해서 다음 랩, 다음 랩을 달렸다. 타이밍을 재다 마지막에 나가는 평소와 달리, 플라잉랩을 여러 번 빠르게 달리다 보니 Q2세션 타이머가 종료된 후 플라잉랩을 소화하는 드라이버가 거의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의 이득은, P10인데도 마지막 플라잉랩 기회를 포기하고 타이어를 아낀 스트롤이 봤다. 마지막까지 플라잉랩을 달린 드라이버들은 조금씩 내린 비로 젖은 트랙을 극복하지 못하고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Q3에서는 대부분이 새 소프트를 끼고 나왔고, 알론소와 스트롤이 피트레인 제일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Q3시작 직전, 하늘은 검어졌고 페라리 팀 라디오에 의하면 세션 시작 후  7분만에 우천이 예상됐다. 베르스타펜은 또 피트레인 추월을 하며 조금이라도 빠르게 트랙에 나오려 했고, 알론소와 스트롤이 가장 먼저 플라잉랩을 시작했다. 이들의 약간 뒤에서 르클레르가 달렸고, 그들 중 가장 차 앞 공간을 잘 확보한 베르스타펜이 1위, 애스턴마틴 두 대 중 뒤에 달린 스트롤이 3위, 알론소가 4위였으며 역시 클린에어를 잘 확보한 르클레르가 2위로 올라갔다. 이 뒤로는 의미가 없었다. 이미 트랙이 물을 머금기 시작한 탓에, 후발주자들이 극복할 수 없는 랩타임 격차가 났기 때문이다. Q3 시작 후 약 4분만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피아스트리는 섹터3에서 스핀, 트랙 아웃을 하며 10위, 그로 인해 옐로 플래그를 받은 페레즈가 9위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비가 내리고, 천둥번개가 치며 레드 플래그, 세션이 종료됐다.

    미끄러진 피아스트리와 세기말 분위기의 날씨.

     

    5. 전망

     

     천둥번개가 치고 먹구름이 몰려든 인터라고스의 날씨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는데, 흑마술이란 게 있다면 이런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날씨 변화가 급격했다. 만약 흑마술을 부릴 누군가가 있었다면, 애스턴마틴 소속의 누군가였을 것이다. 우선 베르스타펜은 퀄리파잉 세션에서 단 한 번 Q1을 기록했는데, 그게 Q3이었다. 필요할 때 잘 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일깨워준 세션이었다. 하지만, 주인공은 베르스타펜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P3과 P4를 차지한 애스턴마틴, 그 중에서도 한 그리드 앞선 스트롤이었다. 21라운드까지 오면서 스트롤이 퀄리파잉에서 알론소를 앞선 건 이번이 세 번째로, 랩타임을 본다면 알론소 뒤에서 달렸다는 것을 이유로 P3을 차지했다. 물론 토잉을 받았다 해도, 알론소와 동급의 주행을 하지 못했다면 랩타임 경쟁에서 승리하진 못했을 것이므로 폄하할 수는 없는 성과다. 특히 안 좋은 모습을 보인 지 오래인 애스턴마틴, 그 중에서도 특히 안 좋았던 스트롤이 지난 몇 번의 레이스 동안 반등의 기미를 보이다, 드디어 성과를 보였다.

     

    드디어 웃는 애스턴마틴과 도련님

     

     짧은 프랙티스, 고지대 등 성능순으로 줄세우기가 될 확률이 높은 트랙이었다. 어느정도는 그렇게 됐다. 하지만 스타팅 그리드 순위를 뒤흔들만한 가장 강력한 요소인 기상 상황이 널을 뛰었고, 이 변수를 제대로 이용한 애스턴마틴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다. 문제는 애스턴마틴의 차량 신뢰성인데, 후반기 들어 두 대가 같이 레이스를 완주하는 모습이 드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고 롱런 페이스가 안 좋냐 하면 또 그건 아닌데, 멀쩡히 달리다가 급격히 문제가 생겨 리타이어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여러 모로 애스턴마틴의 롱런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르클레르는 또 이상할 지경으로 강한 숏런을 보여줬지만, 레이스에서는 2위를 지키면 다행으로 보인다.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은 많은 랩을 소화하다 보면 결국 앞으로 나오게 되어 있고, 애스턴마틴도 가능성이 있다. 레이스 내내 르클레르의 뒤통수가 따끔거릴 듯하다.

     

     알파타우리, 알파로메오는 지난 몇 개 그랑프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반면, 이번 퀄리파잉에서는 다시 시즌 초의 그자리로 되돌아가 버렸다. 츠노다는 또 임피딩 피해를 주장했지만, 늘상 그렇듯 별 일 아니었다. 그런 사소한 투정보다는, 두 팀의 차들이 롱런에서는 어떤 경쟁력을 보일 지가 진정한 관전 포인트다.

     

     가장 큰 변수는 스프린트다. 스프린트 슛아웃과 스프린트를 거치며 사고나 차량 이슈가 생길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모멘텀이 반전될 수 있다. 오랜만에 애스턴마틴의 포디움이 보고싶지만, 우선 스프린트부터 잘 치러야 그 뒤가 수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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