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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리뷰 : 19R 미국 그랑프리(SQ,SR,R) - 포기하면 그 순간이 시합 종료야.F1과 잡담 2023. 10. 24. 19:46
1. 스프린트 슛아웃
또 한 번의 퀄리파잉이다. 제대로 조진 애스턴마틴에게 두 번째 주어진 기회이고, 뼈아픈 실수로 6위까지 떨어진 베르스타펜에게도 두 번째 기회다. 물론 별개 레이스의 퀄리파잉이니 본 레이스 그리드와는 무관하지만 기분상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SQ1에선 별다른 사건사고가 벌어지지 않았다. 아웃랩을 달리던 러셀이 르클레르를 가로막는 임피딩을 저질렀고, 플라잉랩을 달리던 해밀턴이, 역시 플라잉랩을 달리던 츠노다를 뒤에서 건드려 둘 모두의 랩을 망쳤다. 이 두 사건 외 순위표상 이변이 벌어지지 않았으니, 그저 있을 법한 세션에 불과했다. 탈락자도 하스 두 대, 알파로메오 한 대(보타스), 알파타우리 한 대(츠노다), 윌리엄스 한 대(사전트)였다. 퀄리파잉에서 상상 이상의 졸전을 펼쳤던 애스턴마틴은 그래도 'Q1딱'만은 면하며 조금이나마 차와 트랙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SQ1 말미부터 많은 팀들이 플라잉랩을 단 한 번 달려, 가볍고 빠른 '궁극의 랩'을 달성하는 작전을 시도했다. 이런 시도의 장점은 트랙 에볼루션을 억제하면서도 본인은 그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 타이어를 아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반면 단점은 너무 당연한데, '궁극의 랩'이 쉽게 나와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쉽게 나오면 궁극일 리가 없듯이 말이다.
어차피 단 한번 달릴 거라면, 트랙에 최대한 늦게 나오는 게 좋다. 한 대라도 레이싱 라인을 더 밟고 나서 달려야 트랙 에볼루션의 효과를 더 강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인데, 그러다 보니 퀄리파잉 말미에는 트래픽이 엉켜 임피딩이나 접촉사고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SQ2 이후로는 한 번 달리기 작전을 펼쳐도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이는 트랙을 달리는 차량 수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다. 20대가 모두 달리던 SQ1의 임피딩과 사고는 바로 그 이유로 발생했다.
SQ2에서는 베르스타펜이 9번 코너에서 갈라쇼를 펼치고도 P1으로 SQ3에 진출했다. 갈라쇼라 함은, 9번코너를 탈출하다 스핀을 했다는 의미인데, 이곳은 연습 세션에서 피아스트리가 사고를 낼 뻔했던 그 지점이다. 같은 지점에서, 피아스트리보다 훨씬 위태로운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베르스타펜은 그래놓고도 1위를 했는데, 많은 팀들이 한 번 달리기 작전을 펼치는 동안 레드불은 우직하게 정석대로 랩타임을 만들어 놨기 때문이다. 플라잉랩을 여러번 달리는 이유는 이래서다. 탈락자는 알핀 1대(오콘), 애스턴마틴 2대, 알파로메오 1대(저우관위), 알파타우리 1대(리카도)였다. 스트롤의 온보드캠에는, 말썽을 부리던 왼쪽 앞바퀴 브레이크가 12번 코너에서 파업(휠락)을 하는 장면이 잡히기도 했다.
반면 윌리엄스의 알본은 P10으로 Q3에 진출했는데, 플라잉랩을 단 한 번만 달리는 이유는 이래서다. 차 성능상으로는 오콘이 올라가고 알본이 떨어지는 게 맞다. 하지만, 표본이 적으면 변수의 영향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변수를 제대로 터뜨려 성능차를 극복하려는 것이 많은 팀들의 노림수였는데, 알본만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SQ3의 시간은 8분이다. 그런데 4분 40초가 남기까지 한 대도 차고에서 나오지 않았다. 남을 차들만 남았으니 모두가 한 번 달리기 작전을 채용한 것이다. 모든 차가 단 한 번 달려 기록을 줄세웠는데, 사건사고가 벌어질 환경은 아니었다. 단 10대, 그것도 빠른 차와 빠른 드라이버만 남아 달리기에 그러하고, 달린 랩 수가 적어 트랙 에볼루션 차이도 최소화되기에 그러하다. 결국 원래 빠른 차들과 원래 빠른 드라이버들이 앞 그리드를 차지했다. P1부터 차례대로 베르스타펜, 르클레르, 해밀턴, 노리스다. P1과 P4의 랩타임 차이는 당 0.1초로, 이들이 COTA의 주인공이 될 것임을 천명하는 결과이기도 했다. 5위 피아스트리는 4위 노리스보다 0.25초 이상 뒤처졌다.
9위 알본과 1위 베르스타펜의 랩타임 차이는 0.8초 가량이다. 큰 차이라고 볼 순 없는데, 가슬리만 오히려 SQ2보다 느려지며 10그리드를 차지했다. 뭔가 실수가 있었겠지만, 중계화면에는 잡히지 않았다. 그나마 가슬리 입장에서 다행인 건, 러셀이 SQ1에서의 임피딩으로 인해 3그리드 강등, P11이 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알본,가슬리,리카도는 한 그리드씩 앞으로 전진했다.
2. 스프린트 레이스
사인츠만이 유일하게 소프트 타이어를 끼웠고, 나머지 19대는 올 미디엄 스타트였다. 이런 상황에서 소프트 스타트의 위력은 지난 카타르 스프린트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사인츠는 출발 직후 두 계단 올라갔다. 반면 베르스타펜은 로켓 스타트로 공간을 많이 확보했고, 르클레르도 나쁘진 않았다. 그 다음이 문제였는데, 베르스타펜이 르클레르를 크게 압박해 레이싱 라인에서 완전히 이탈시켰다. 베르스타펜이 재가속해서 1번 코너를 탈출하는 동안, 르클레르는 탈출속도를 확보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해밀턴이 코너를 넓게 돌아 2위로 올라섰다. 이렇게 베르스타펜 1위, 해밀턴 2위, 르클레르 3위를 형성했고, 이 순위가 레이스 종료까지 이어졌다. 극초반을 제외하곤, 해밀턴은 베르스타펜을 따라가지 못했고 르클레르도 해밀턴을 따라가지 못했다. 이들 간의 랩타임 차이는 계속 벌어져, 레이스 말미에는 각각 6초 가량의 시간차를 두게 됐다.
반면 11그리드에서 출발한 러셀은 2랩만에 4대를 따라잡으며 (그리드 페널티가 없었다면 출발했을)원래 그리드보다도 높이 올라왔다. 그 과정에서 피아스트리를 트랙 밖으로 돌며 추월했는데, 피아스트리에게 떠밀려 나간 척(?)을 하며 순위를 양보하지 않았다. 이 연기가 안 통해서 5초 페널티를 받았다. 5초 페널티를 받은 시점에만 해도, 윤재수 해설은 해볼 만한 도박이라는 평을 내렸다. 난적인 맥라렌을 제치는 대가로 5초 추가라면, 감당할만 했다. 대신 피아스트리를 제친 7위에서 더 올라가길 바랐을 것이다. 차량 성능을 봤을 때 그게 가능하리라는 계산이 섰기에 자리 양보 대신 페널티를 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계산에 여러 문제가 있었다.
첫째 문제는 전제에서의 오류였다. 피아스트리의 맥라렌은 난적이 아니었다. COTA에 처음 와본 루키 피아스트리(F2는 COTA에서 그랑프리를 열지 않음)는 가뜩이나 경험부족인데 프랙티스마저 짧아 트랙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고, 트랙 이탈 3회로 흑백기를 받으며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남들은 다 남과의 싸움을 하고있는데 혼자 자신과의 싸움을 하면 결과는 뻔하다. 5그리드에서 출발한 피아스트리는 쭉쭉 순위를 밀리며 7랩만에 10위까지 내려갔고, 레이스 종료때까지 10위에 집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피아스트리 추월하자고 감수한 페널티의 가치도 낮아진다.
둘째 문제는 사인츠의 존재였다. 러셀은 12랩에 사인츠와 1초차 이내 배틀을 시작했다. 이 무렵 사인츠의 상황을 되짚어 보자면, 소프트 타이어라는 대출을 상환하기 시작한 지 꽤 지난 시점이었다. 즉, 스타트와 레이스 초반 그립을 활용해 올려놓은 순위를 되돌려주기 시작한 시점이라는 의미다. 7랩부터 4위 자리를 두고 노리스와 배틀을 시작했는데, 몇 번 정도 좋은 움직임으로 순위를 지켜냈지만 결국 10랩에 자리를 내줬다. 물론 그동안 3위 르클레르가 멀리 달아났으니, 윙맨으로서 역할은 쏠쏠하게 한 셈이고, 포디움 순위도 여기서 고정됐다. 하지만 아직 사인츠의 대출은 완전상환이 아니었으니, 바로 뒤에서 차이를 좁혀 오던 페레즈에게도 순위를 내줬다. 레이스를 시작했던 6그리드로 되돌아온 상황. 이 때가 12랩이었다.
19랩짜리 레이스 중, 12랩에 배틀을 시작했다. 타이어 상황도 사인츠가 안 좋았다. 러셀이라고 타이어가 아주 싱싱한 것도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러셀에게 유리한 상황인 것은 맞았다. 보통 이 정도 상황이면 레이트브레이킹과 DRS로 최대 서너번 추월을 시도할 여력이 나온다. 그 이상 시도했다가 실패한다면, 더티 에어로 인한 손해 때문에 경쟁이 어려워진다. 러셀은 14랩의 1번 코너에서 레이트 브레이킹을 시도했는데, 사인츠가 라인 크로스로 앞순위를 되찾아 왔고, 긴 스트레이트에선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의 직선 성능 차이때문에 러셀은 DRS를 열고도 큰 이득을 보지 못했다. 러셀은 이후로도 1번, 11번, 12번 등 추월 명당에서 사인츠와 격차를 크게 좁혔지만 결국 레이트 브레이킹을 찔러넣지 못했고, 그 결과 더티 에어만 잔뜩 뒤집어쓰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 러셀 입장에서는 추월을 한다 해도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5초 페널티 때문인데, 상대가 사인츠든 페레즈든 그를 이기기 위해선 추월을 하고도 5초 간격을 벌려야 했다. 그러니 사인츠를 앞지르려면 14랩 1번 코너에서의 배틀에서 반드시 승리를 했어야 했다. 그 기회를 놓친 순간, '아쉽지만 여기까지'였다. 러셀이 사인츠에게 막혀있는 동안, 뒷 순위의 가슬리와 알본이 랩타임 격차를 좁혀 왔고, 7ㅏ슬리는 5초 간격 안쪽으로 들어와 순위 뒤집기에 성공, 알본은 5.3초 차이로 레이스를 마무리하며 러셀을 앞지르지 못했다. 그 와중에 17랩, 랜스 스트롤은 왼쪽 앞바퀴 브레이크가 고장나 리타이어했다.
냉정히 보자면 러셀의 페널티 감수 작전을 실패라 보긴 어렵다. 출발 그리드보다 앞에서 레이스를 끝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포츠맨쉽의 관점에서 과연 떳떳한 장면인가, 라는 의문이 들긴 한다. 트랙을 이탈해서 추월을 완성시킨 순간, 러셀에겐 포지션을 되돌려준다는 선택지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해 보고는, 포지션을 되돌려주는 대신 5초 페널티 감수하기를 선택했다. F1은 원래 영악한 쪽이 이득을 보는 곳이다. '규정에 써있지 않은 것은 허용된다'가 기본 자세고,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규정 우회는 오히려 찬사를 받기도 한다. 러셀은 규정에 써있는 대로 행동했지만, 창의적이지도, 획기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빠른 차를 가진 팀이 그 빠름을 무기로 규정의 허점을 파고드는 인상을 받기도 했다. 피아스트리도 레이스 후 인터뷰에서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러셀의 선택에 유감 의견을 밝힌 피아스트리, 그를 지지한 노리스
3. 본 레이스
§스타트 이전
스프린트에서부터 이어지는 모멘텀은 확실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불과하지만, 쉽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COTA에서의 롱런 성능은 베르스타펜, 메르세데스, 맥라렌, 페라리 순서라는 점이 입증됐지만, 포디움에 올라간 페라리의 모멘텀도 나쁘지 않았다. 스타트 시점에서의 이슈로는, 애스턴마틴 두 대와 하스 두 대가 모두 피트레인 스타트를 하게 됐다는 점이다. 두 팀 모두, 페널티를 감수하고 부품을 교체했는데 애스턴마틴은 대실패를 겪은 브레이크와 플로어를, 하스는 리어윙을 다시 업데이트 이전으로 되돌렸다. 이들 네 대만 하드 타이어를 끼고, 나머지는 전부 미디엄을 끼웠다.
§스타트 이후
상위권(P1-P6)
노리스, 사인츠, 베르스타펜이 로켓스타트에 성공하며 순위를 크게 변동시켰다. 동시에 폴포지션에서 스타트한 르클레르는 스타트 실수를 하며, 첫 랩에선 1-2위가 자리를 바꾸고, 3-4위가 자리를 바꿨다. 순서대로 노리스, 르클레르, 사인츠, 해밀턴,베르스타펜이 P1-P5를 형성한 가운데, 6랩이 되자 해밀턴이 페라리 두 대를 제치며 2위로 올라갔고, 11랩이 되자 베르스타펜도 르클레르를 제치며 3위로 올라갔다(사인츠는 6랩 이전에 제침). 11랩에, 페라리는 오늘 포디움에 올라갈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숏런이 아무리 좋아도, 냉각계열과 타이어 내구도 문제를 달고 있으면 이렇게 된다는 개인적인 교훈을 배웠다.
이 다섯명의 첫 스틴트에선, 노리스가 해밀턴과 약 2초 간격을 유지하며 선두를 달렸다. P1 노리스, P2 해밀턴, P3 베르스타펜이 차례로 달리던 중, 레이스 페이스는 역으로 베르스타펜>해밀턴>노리스 순서였다. 그래도 레이스 초반이라 무리하게 배틀을 펼치지는 않았는데, 17랩에 레드불이 베르스타펜을 불러들여 미디엄을 끼우면서 구도가 변한다. 곧바로 다음 랩에 노리스와 사인츠가 타이어를 교체(각각 하드, 미디엄)하며 언더컷을 방어했고, 페레즈도 18랩에 미디엄을 미디엄으로 교체하며 사실상 베르스타펜과 같은 전략을 실행했다. 정반대로, 즉 팀메이트 간 다른 전략을 선택한 팀이 페라리였다. 둘 중 한 쪽이 명백하게 정답이었고, 반대쪽은 명백하게 오답이었다. 타이어 전략에서 레드불과 페라리가 정반대의 선택을 했는데 페라리가 정답, 레드불이 오답일 가능성이 과연 있을까?
21-22랩에선 메르세데스가 해밀턴, 러셀을 차례로 불러들여 하드를 끼워줬다. 24랩에선 르클레르가 하드 타이어를 끼웠다. 이들은 원스탑을 노려볼 만한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대차게 망할 뻔했다. 미디엄 베르스타펜은 28랩에 하드 노리스를 추월했는데, 메르세데스와 맥라렌의 하드로는 미디엄 베르스타펜을 따라갈 수 없었다. 노리스는 도저히 안 되겠는지 35랩에 하드를 하드로 교체하며 언더컷을 시도했고, 베르스타펜은 바로 36랩에 하드를 끼운 채로 4위, 노리스 앞에서 복귀하며 언더컷을 방어했다. 같은 전략으로 달리던 사인츠도 36랩에 하드를 끼웠다.
20랩이 남았고, 레이스 페이스가 극적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3위권 이내의 드라이버들(P1 해밀턴, P2 페레즈, P3 르클레르)은 이제 새 타이어를 끼워야 베르-노리스를 추격할 수 있는 상황(사인츠는 경쟁권에서 멀어졌다), 37랩, 38랩에 페레즈와 해밀턴은 새 타이어를 끼웠고, 특히 해밀턴은 아껴뒀던 미디엄을 꺼내며 마지막 추격을 개시했다. 원래 원스탑을 염두에 뒀다가, 페이스를 체크하고 작전을 수정한 것이다. 그도 베르스타펜처럼 4위로 복귀해 선두와 7초 가량의 간격을 두고 달리게 됐다. 타이어 차이를 감안하면 2위까지는 거의 확보, 1위에 도전할 만한 산술적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마지막 10랩 가량을 놔두고는 베르스타펜이 브레이킹에 애를 먹으며 페이스가 떨어지는 기회까지 잡았지만, 백마커와 엉키며 추격이 종료됐다. 베르스타펜 1위, 해밀턴 2위, 노리스 3위였다.
폴 포지션에서 스타트했던 르클레르는 원스탑을 고수하다가 6위까지 내려앉았다. 전체 20대 중 원스탑을 시도한 것은 르클레르와 리카도 뿐이었는데, 리카도는 중간에 가망없음을 깨닫고 아예 패스티스트랩 도전 겸 소프트를 끼워버리며 투스탑으로 선회했다. 리카도는 시도해보고 안 되니까 포기했지만, 르클레르는 포기할 타이밍을 놓쳐서 끝까지 가버린 것이다. 자기보다 3그리드 뒤에서 출발한 팀메이트보다 2그리드 낮은 곳에서 레이스를 마무리한, 페라리다운 타이어 전략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가슬리가 밝힌 바로는, 레이스 시작 직전 르클레르가 '너희도 원스탑 하냐?'라고 물어왔다고 한다. 가슬리는 "절대 아님.(No Fxxxing way)"이라고 대답하고는, 그 순간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었단다(I didn't know what he was talking about.). 포르자 페라리!
§중위권(P7-P12)
러셀,가슬리는 스프린트에서 보여줬던 무난한 모습들을 그대로 재현하며 P7,P8을 기록했다. 놀라운 건 P9 스트롤이다. 브레이크랑 플로어 롤백했다고 이렇게 빨라지나 싶을 정도의 페이스를 보이며 P9까지 올라왔다. 더욱이, 애스턴마틴은 피트레인 스타트였다! 사실 스트롤뿐 아니라 알론소도 줄곧 포인트권에서 레이스를 해왔지만, 49랩에서 플로어 문제로 리타이어하며 더블 포인트 피니시 기회를 놓쳤다. 그가 리타이어한 자리를 츠노다가 채우며 P10을 기록했는데, 마지막 랩에 소프트 타이어를 끼우고 패스티스트 랩까지 달성했다. 1점 벌어갈 거 2점 벌어간 셈이었는데, 사실 나중엔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를 더 받았다. 11-12위를 자주 달성했던 알파타우리와 츠노다라서, 포인트 피니쉬는 충분히 예상범위 내였다.
11-12위는 윌리엄스 듀오가 차지했다. 알본은 본인의 기량, COTA에서의 차량의 성능 모두 입증한 바 있어 일부 기대를 걸만 했지만, 사전트 12위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특히 오늘 방송화면에서 추월하는 모습을 여러번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은 하스가 상대였다. 53랩 무렵, 사전트는 타이어 상태가 안 좋은 휠켄버그를 추월하며 12위로 골인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 마지막 추월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하위권(P13-)
오콘과 피아스트리는 리타이어가 아니었으면 다들 한자리씩 했을 법한 인물들이다. 피트레인 스타트를 감수하며 차에 산삼이라도 갈아먹인 듯 좋은 페이스를 보이고 있었던 알론소도 포인트권이었다. 포인트를 따낼만한 드라이버 세 명이 리타이어했으니, 이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상당할 것이다. 그 위로는 오랜만에 복귀한 리카도가 그리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며 생존자 중 최하위를 기록했고, 본인도 인터뷰에서 아쉬움을 표출했다. 물론 시즌 중 복귀에, 부상으로 인한 공백은 충분히 참작할 만한 부진사유다.
하스는 P13과 P16, 그 사이에 알파로메오 두 대가 들어갔다. 알파로메오는 지난 그랑프리에서 업데이트를 들고 와 더블 포인트 피니쉬를 할만큼 좋은 모습을 보였는데, 이번엔 알파타우리, 윌리엄스에 밀렸다. 서킷과의 상성을 무시할 만큼 +가 큰 업데이트는 아니었던 것이다. 코스트 캡의 부담 때문에 지금부터의 업데이트는 내년 시즌을 염두에 둔 대형 업데이트거나, 없데이트(업데이트가 없음)일 것이다. 알파로메오의 시즌 막판 포인트 싸움은 모 아니면 도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물론, 도가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다. 원래 윷놀이도 그렇다.
하스는 계속해서 뭔가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P12까지 혜택을 본 이번 레이스에서, 사전트와 영혼의 맞대결을 펼친 휠켄버그가 결국 석패하며 빈손으로 돌아갔다. 리어윙 업데이트에 문제가 있어 이전 리어윙을 다시 달았다는데, P1에서의 페이스가 좋았던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아쉬운 결과다. 전반적으로 올 시즌 후반부에 들어서며, 세션이 진행될수록 상대적으로 성능이 하락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다. 차량 퍼포먼스의 실링, 포텐셜이 낮은 듯한 인상이다. 하스 역시 내년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올 시즌 잔여 경기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좋겠다.
§그런데, 레이스 이후.
실격 발표가 났다. 해밀턴(P2)과 르클레르(P6)였다. 차체 높이 규정 위반이다. 지상고를 규정 이하로 낮춰 달렸는데, 경기 이후 랜덤 차량 검사에서 위반이 발견된 것이다. 차체를 바닥에 붙일수록 바닥면을 흐르는 공기의 흐름이 강해져 다운포스가 강해지는데, 바닥에 너무 붙으면 드라이버가 위험할 수 있으므로 차체 높이를 낮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규정을 위반했는지 측정하는 방법은, 차 바닥의 플랭크(차 바닥 보호를 위해 덧대는 판자) 마모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차를 낮출수록 플랭크가 바닥에 많이 긁혀 마모가 심해지기에, 이것으로 차체 높이를 측정하는 게 불합리한 측정방식은 아니다. 단 20대 중 4대를 랜덤으로 검사했는데, 그 중 두 대가 걸린 게 놀라울 따름이다. 규정은 규정이고, 특히 드라이버의 안전과 관련되어 있으니 페라리와 메르세데스도 수긍하며 각자의 변명을 내놓았다.
따라서, P3부터 P5까지는 한 계단씩, P7부터는 두 계단씩 순위가 상승했다. 가장 대박을 터뜨린 건 츠노다인데, 원래 2점(P10 1점, 패스티스트랩 1점)을 벌어가야 하는 레이스에서 갑자기 5점(P8 4점, 패스티스트랩 1점)을 벌어가게 됐다. 11,12위를 차지한 윌리엄스 듀오는 갑자기 더블 포인트 피니쉬를 달성하게 됐고, 특히 사전트는 F1 데뷔 후 첫 포인트를 수확했다. 7ㅏ슬리는 7위를 넘어 6위를 차지했고, 사인츠는 포디움에 올라가지 못한 채 포디움 기록만을 남겼다.
개인적으로 이번 레이스의 주인공을 꼽자면, 로건 사전트다. 지금부터 매 경기 포인트 피니쉬를 한다 해도 다음 시즌 시트 확보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계속된 DNF, 부진으로 의욕과 자신감도 떨어졌을 것이다. 심지어 이번 그랑프리까지 와서도 계속 그랬다. FP, Q, SQ, SR을 모두 망치고, 본 레이스에 임했다. 레이스 내내 좋은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포인트권 밖이어서 모두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홈 팬들의 환호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전트가 12위로 올라선 것은 그 시점이었다. 레이스 종료까지 단 4랩 남았고, 추월 여부와 관계없이 노 포인트 피니쉬가 확정이었다. 안전하게 달리기를 선택한다고 해서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을 상황이다. 그래도 사전트는 최선을 다해 휠켄버그를 추월했고, 묵묵히 레이스를 마쳤다.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왜 그랬는지는 모른다. 눈앞에 있는 상대를 이기겠다는 호승심, 또는 본능일 수도 있다. 홈 그랑프리의 팬들에게 보답하고자 하는 심정이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그는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누군가는 그 모습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완성한 그 추월에 천운이 더해져 자신의 F1 첫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00년생, 그것도 00년 12월 31일생 사전트에게 배우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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