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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1 그랑프리 리뷰 : 18R 카타르 그랑프리(스프린트,레이스) - 오일 머니가 사람 잡네.
    F1과 잡담 2023. 10. 10. 00:04

    스프린트

     
     두 번의 퀄리파잉에서 전반적으로 모든 드라이버들이 트랙 학습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이 드러났다. 이게 퀄리파잉까지는 환장의 레이스 진행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꿀잼 상황을 많이 만들어냈는데, 레이스에서도 그러할 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첫째로는 3그리드에서 시작한 베르스타펜이 1위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둘째는 루키 피아스트리가 생애 첫 F1 폴 포지션에 이어 5년차 노리스도 못한 우승을 하게 될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였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팀 공통의 화제라면, 퀄리파잉을 두 번이나 하며 잔뜩 소모한 타이어를, 타이어 피로도 최고인 서킷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가 있었다. 시청자나 관중 입장에선, 지난 며칠간 모든 세션에서 4번, 5번, 12번, 13번 등 주요 코너에서 계속 발생했던 코스 이탈 문제가 얼마나 줄어들지도 관건이었다. 보통 ERS 풀차지에 더티 에어 걱정 없이 달리는 퀄리파잉이, 본 레이스보다 코스 이탈 빈도가 높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본 레이스라 한들 주말 내내 코스이탈 횟수가 심각하게 많았기에, 아예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스프린트의 관전 포인트는 이 정도였다.
     
     소프트 타이어를 끼고 나온 드라이버들이 스타트에서 이점을 취하며 순위를 올렸다. 러셀, 르클레르, 사인츠였다. 덕분에 2그리드에서 시작한 노리스가 시작과 동시에 3계단 내려오며 5위에 집을 지었다. 문제는 타이어 소모가 극심한 루사일에서 소프트로 얼마나 버틸 수 있냐는 것이었는데, 가뜩이나 러셀과 르클레르는 이미 지난 세션에서 사용했던 소프트를 끼고 나왔기에, 상위권을 꿰찼어도 웃을 수만은 없었다.
     
    메르세데스 vs 페라리
     
     메르세데스와 페라리의 성능 차이는 4랩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소프트)러셀은 (미디엄)피아스트리를 추월할 수 있었지만 (소프트) 페라리 두 대는 세이프티 카 리스타트 상황에서도 피아스트리를 추월하지 못했다. 그리고 9랩에 돌입하자, (새 타이어를 끼워서)타이어 상황이 르클레르보다 양호한 사인츠조차 앞에서 버티는 피아스트리, 뒤에서 쫓아오는 베르스타펜 양쪽에 대해 모두 대항력을 상실했다. 정황적으로, 소프트 타이어의 경쟁력이 10랩도 보장되지 않는 모양새였다. 심지어 두 번의 세이프티카로 3랩 이상을 서행했음에도 말이다. F1 시청을 재개한 이후(2023시즌 여름휴가 이후), 이 정도로 타이어 잡아먹는 트랙은 처음 본다.

    타이어를 갈아버리는 원흉, 토블론(초콜릿)모양 연석, 그리고 타이어 그레이닝이 심하게 일어난 소프트 타이어.

    레드불(베르스타펜) vs 맥라렌(피아스트리)

     
     베르스타펜이 결국 끝까지 피아스트리를 잡지 못한 것은 의외였다. 출발 그리드는 두 개 차이였지만(피아 P1, 베르 P3), 스타트 직후 그 사이에 소프트 타이어 세 대가 끼어들며 두 대가 경쟁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이렇게 되면 레이스가 짧고, 타이어 피로도가 크기에 앞 차가 많이 유리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베르스타펜의 RB19라면 최소한 한두 번의 배틀은 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레이스 말미에도 2초 가량의 차이가 나며 피아스트리와 베르스타펜의 배틀은 한 번도 성립하지 않았다. 그만큼 RB19의 압도적인 우위가 약해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솔직히, 시즌 내내 그만큼 해먹었으면 이제 따라잡힐 때도 됐다. 내년 차에도 투자해야 하니까.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만, 그래도 막상 베르스타펜이 경쟁자에게 랩타임이 밀리는 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결과

     
     결국 7위까지는 예상과 대동소이한 순위가 찍혀 나왔다. 1위와 2위는 예상과 자리를 바꿨지만, 전반적으로는 성능 차이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였다. 즉, 포디움 세 명 밑으로 메르세데스, 페라리가 각각 4,5등과 6,7등을 차지했다. - 인 줄 알았는데, 레이스가 끝나고 타임 페널티를 먹어 7위 르클레르가 12위로 내려갔다. 코스 이탈 4회에 따른 징계였다. 결국 극복하지 못한 4,5번 코너에서 사고를 쳤다. 그 결과, 알론소가 또 포인트를 얻어 갔고, (카메라에 안 잡혀서)뭘 했는지 잘 모르겠는 알본도 2점을 벌어 갔다. 그리고, 이 레이스로 베르스타펜의 3연속 드라이버 챔피언 타이틀이 확정됐다.

    세이프티 카

     
     로슨의 스핀, 사전트의 스핀, 체코-헐크-오콘의 삼중추돌로 세이프티 카가 세 번 출동했다. 드라이버가 안전하다는 전제 하에, 트랙 위 사고는 F1 관전의 꽃인 것은 맞다. 세이프티 카 세 번도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런데 레이스 길이가 1/3인 스프린트에서 그러고 있으니, 김이 새는 부분이 있었다. 레이스를 보고 싶은 것이지, 기차놀이를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레이스 거리가 짧아서 피트인이 사실상 봉인되니, 세이프티 카 상황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타이어 변수도 같이 봉인됐다. 세이프티 카가 경기를 재미없게 만드는 요소(페이스 하락)는 그대로고, 재미있게 만드는 변수(타이어)는 없어진 셈이다. 그나마 세이프티 카가 순위를 지켜줘서, 소프트 타이어들은 노리스에게 조금이나마 늦게 추월당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노리스는 마지막 2랩에 소프트 타이어 3명을 추월하는(르클레르, 사인츠, 러셀) 쁘띠 추월쇼를 펼쳤다. 그래도, 여전히 뺏긴 재미가 더 크다고 생각은 한다.

     
    §레이스
     
    스타트 이전

     
    본 레이스 시작도 전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우선은 사인츠의 DNS 결정이 있었다. 연료 계통 문제가 발견되었고, 그대로 레이스를 소화하기엔 무리였는지 본 레이스 불참이 결정되었다. 오랜만에 페라리다운 DNS였는데, 이런 건 굳이 초심 안 찾아도 될 것 같다. 그리고, 전날 사고로 차량이 파손된 페레즈가 10초 페널티 + 피트레인 스타트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뉴스를 잠재우는 대박 뉴스가 있었으니, 타이어 제공사 피렐리의 분석 결과를 반영해 결정된 '타이어 수명 제한'이었다. 컴파운드 불문, 어떤 타이어든 18랩을 초과해서 달릴 수 없는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타이어 기준 18랩이라서, 앞선 세션을 합쳐 5랩을 달리고 보관해 둔 타이어를 다시 끼운다면, 13랩밖에 달릴 수 없는 식이다. 위반 시 최대 실격이라는 중징계가 내려지기에 모두가 이 추상같은 명령을 준수했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부터 F1 뉴스와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지만, 이런 종류의 통제는 처음 봤다. 지난 그랑프리 페레즈의 부활 후 페널티 수행처럼, 올 시즌 후반에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자주 나오는 듯하다. 이 발표 자체가 레이스 시작이 몇 시간 안 남은 시점에 나와, 각 팀의 전략이 막판에 크게 어그러졌을 것이라 추측한다.

    최종 수정된 스타팅 그리드

     카타르 그랑프리 레이스는 전체 57랩이다. 타이어 수명이 최대 18랩이라면 최소 3스탑이 강제되는 셈이다. 보기 드문 3스탑을 모든 팀이 해야 하는데, 거기다 세이프티 카라도 나온다면 4스탑까지도 가능해 보였다. 실제로 4스탑을 한 차가 나오기도 했다. 3스탑이면 타이어 4세트를 써야 한다. 스프린트 때문에 남은 타이어가 적어 무조건 중고 타이어를 써야 하는데, 전날 소프트 타이어는 지우개보다 빨리 닳아버린다는 것이 확인됐다. 타이어 선택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약팀 입장에서 이 수명 제한 조치가 호재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피트 스탑을 한 번 더 하거나, 덜 하는 데서 오는(주로 덜 하는 쪽이겠지만) 운영적 이점이 불가능해질 테니 말이다. 대신 피트 크루의 실력은 그만큼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실력을 유감없이, 사실 역대 최고 수준으로 발휘한 팀도 나왔다.

    스타트 이후

     
    레이스 시작 시 한 번, 1번 코너에서 한 번 이슈가 발생했다. 먼저 레이스 시작 때는, 사인츠의 DNS로 인해 비워 놓아야 하는 12번 그리드에 실수로 P14인 휠켄버그가 들어서서 출발했다. 10초 페널티. 여기서 이미 하스의 포인트 획득은 물 건너 갔다. 그리고 1번 코너, 해밀턴이 충돌했다. 그것도 팀메이트 러셀과 충돌했다. 

    메르 팬들 눈 감아. 사진 왼쪽에 있는, 소프트 낀 메르세데스가 해밀턴.

     코너 우선권 관련한 규정은 사실 잘 모른다. 그래도 쓰리 와이드에 가까운 이 상황에서 그나마 선택권이 있었던 건 해밀턴 아니었나 싶긴 했다. 오른쪽에 이미 베르스타펜이 자신의 라인을 타고 있어서, 러셀은 오른쪽으로 피할 순 없었다. 왼쪽에서는 팀메이트가 좁혀오고 있으니 당연히 왼쪽으로도 피할 수 없었다. 반면 해밀턴은 반드시 저 라인을 타야 할 필요는 없었다. 당시 공간을 보면, 조금 넓게 도는 게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해밀턴은 충돌 직후 팀 라디오에 불만을 약간 표출했지만, 사고 장면을 확인한 뒤엔 100% 자기 잘못이었다고 시인했다. 이 사고로 세이프티 카가 출동하고, 러셀은 피트인을 했다가 14위로 복귀했으며, 해밀턴은 리타이어했다. 그렇게, 해밀턴이 지옥행 레이스로 향하는 열차에서 탈출한 마지막 승객이 되었다. 이 레이스가 지옥인 이유는 글 후미에 설명하겠다.
     
     팀메이트 간의 충돌로, 그나마 남은 맥라렌의 대항마 메르세데스의 위기가 찾아왔으니 레이스 후반엔 베르스타펜-맥라렌 2대가 포디움을 예약해 버렸다. 사실, 레이스 후반 뿐 아니라 같은 스틴트에 들어가면 이 세 대가 계속 1-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피트스탑이 워낙 어지럽게 많다 보니 누가 같은 스틴트에 있는지 체크하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맥라렌은 팀 차원에서도 2연속 더블 포디움을 눈앞에 두고 기세가 잔뜩 올랐는지, 1.80초로 피트스탑 신기록을 갈아치워 버리는 기염까지 토했다. 러셀은 결국 '올라갈 차는 올라간다'는 듯 베르스타펜과 맥라렌 미만 모두를 정리하고 4위에 올랐고, 그 다음으로는 익숙한 팀과 이름, 페라리의 르클레르와 애스턴마틴의 알론소가 들어왔다. 업데이트를 들고 온 알삼형제(알핀, 알파타우리, 알파로메오)의 수장 알핀은 오콘을 7위에 올리며 중위권의 자존심을 세웠다.
     
     놀라운 것은 더블 포인트 피니쉬를 기록한 알파로메오인데, 보타스와 저우관위가 8,9위로 합계 6점을 벌어 갔다. 레이스 종료 이후 7위 윌리엄스와의 점수차이가 7점으로 줄어든 점을 감안한다면, 이 6점이 하위권 팀에게 얼마나 큰 점수인지 새삼 체감이 된다. 당연히 업데이트가 유효하고, 드라이버들이 잘 달렸기 때문에 가능한 쾌거였다. 그런데, 랜스 스트롤과 페레즈, 가슬리 등이 일제히 페널티를 먹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쾌거기도 했다. 레이스 후반이 다가올수록 트랙 이탈 누적에 의한 페널티가 속출했고, 배틀에서도 뭔가 쉽게쉽게 길을 비켜주는 등 드라이버들의 집중력이 우려되는 상황이 자주 펼쳐졌다. 그 배경을, 레이스 종료 후 알게 됐다.

    기후 문제

     
     포디움 인터뷰에서, 세 명의 드라이버가 모두 입을 모아 더운 날씨와 높은 습도 때문에 아주 힘들었다는 말을 했다. 여기까진 그러려니 했다. 싱가포르도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기로 유명한 곳이니, 여기도 그랬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레이스 종료 후 알본의 온보드캠에는, 시트에서 스스로 일어나기 버거워하는 모습이 잡혔고, 스트롤도 마찬가지로 힘겹게 일어나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앰뷸런스에 기대 서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피아스트리는 쿨다운 룸에서 의자에 앉기를 거부하고 누워버렸고, 오콘도 레이스 중 구토를 했으며, 수건 깔고 드러누운 사진을 SNS에 올렸다. '가장 힘들었던 레이스'였다는 내용이었다. 르클레르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탈수 증세를 느꼈으며, 시야가 흐려지고 반사신경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그냥 보통 레이스보다 조금 힘든 수준이 아니라, 사람 여럿 잡을 뻔한 더위와 습도였던 것이다.
     
     사실 복선은 깔려 있었다. 알론소는 시트가 너무 뜨겁다며 피트스탑 시 물이라도 뿌려달라고 부탁을 했고(규정상 뿌려주진 못했다), 사전트는 팀과 교신하며 한참을 고민한 끝에 몸상태를 이유로 리타이어했다. 유튜브에서 당시 사전트의 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데, 팀 쪽에서 건강을 우려해 리타이어할 것을 은근히 권할 정도였다. 물론 경기 중계에는 그 팀 라디오가 나오지 않으니, 갑자기 컨디션이 확 나빠진 사전트가 특수 케이스라고 생각했다. 알론소도, 엔진 룸에 뭔가 이상이 생긴 건가 싶었지, 순수 더위와 습도 문제일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스트롤은 문제가 심각했는데, 직선 주로에서 아예 잠깐 의식을 잃었다 되찾는 듯, 고개를 가누지 못한 채 스티어링 휠을 잡은 손이 툭 떨어지는 영상까지 공개됐다. 거의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열사병 증세를 겪었고, 일부는 특히 심각했던 것이다.이 정도면 도저히 웃어넘길 만한 기후 조건은 아니다.
     
     FIA쪽에서 당장 내년 그랑프리부터 조치가 필요할 듯하다. 카타르 날씨가 그나마 선선해지는 달(그런 게 있다면)로 그랑프리 일정을 옮기는 게 최선이겠지만, 안 된다면 최소한 스프린트는 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프랙티스 세션을 충분히 돌려 트랙 적응도라도 확보시켜 줘야 사고가 덜 날 것이며, 레이스 두 번에 퀄리파잉 두 번이라는 체력적 부담이라도 경감시켜 주고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위험천만했던 이번 그랑프리는, 리타이어와 DNS를 포함해 다치지 않고 레이스를 마친 모두가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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