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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그랑프리 리뷰 : 17R 일본 그랑프리 - 다시는 알핀(의 드라이버)을 무시하지 마라.F1과 잡담 2023. 9. 25. 10:25
레이스 결과
예상을 크게 빗나가진 않았다. 그런데 모두가 비슷한 예상을 했을 것이다. 베르스타펜은 역시 시작부터 치고나가 변수를 지웠고, 유유히 폴투윈 했다. 성능 순으로 레드불 다음인 맥라렌이 그 뒤 두 자리를 차지했다. 그 뒤로는 페라리와 메르세데스가 번갈아 들어오며 네 팀의 일곱 드라이버가 위에서부터 7칸째를 차지했다. 남은 세 자리는 알론소, 오콘, 가슬리로, 알핀이 더블 포인트 피니시를 기록하며 중위권 서열정리를 하는 모양새였다. 포인트권 밑으로는 로슨과 츠노다가 P11,P12를 기록했으며, 그 밑으로는 저우관위, 휠켄버그, 마그누센이 차지했다. 나머지 5대(스트롤, 보타스, 알본, 사전트, 페레즈)는 리타이어였다.
레이스 흐름
스타트에서 벌어진 사고의 여파가 오래 지속됐다. 레이스 시작 직후 세이프티카가 나왔는데, 페레즈와 보타스, 저우관위 등이 프론트윙 대미지를 입었으며, 알본의 차는 더 큰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 그리고 여기 언급된 네 명 중 저우관위를 제외하고는 전부 리타이어했다. 저우관위도 인상적인 페이스를 보여주지 못했지만, 원래 그런 차를 몰고 있는지라 사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출발 직후 사고 때문에 그 자리에서 정지한 차는 없었지만, 그 대미지를 안고 롱런을 소화하는 건 어려웠는지 한 대씩 차례차례 리타이어했다. 지난 예측글에선 데그너2(9번) 커브의 연석에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차 바닥을 긁고 지나가는 점에 주목했었는데, 사실 서킷 자체가 고저차가 심해 그 지점 말고도 비슷하게 플로어 대미지를 유발하는 커브가 많았다.
하위권에서 대미지를 못 버틴 차가 한대씩 리타이어 해나갔다. 첫 랩에서 사고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전트에게 한번 더 얻어맞은 보타스, 늦은 스타트와 무리한 추월시도로 프론트윙을 두 개나 해먹은 페레즈, 보타스를 들이받은 사전트, 보타스에게 들이받힌 알본이 리타이어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스트롤도 리타이어 했다.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아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이런 경우 대개는 파워유닛 이슈다. 물론 스트롤의 리타이어는 그리 충격적인 소식이 아니었다.
상위권에서는 팀메이트끼리 붙어 달리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피아스트리와 노리스, 해밀턴과 러셀, 사인츠와 르클레르는 타이어 전략 차이에 의해 잠시 몇 순위의 차이가 났을 뿐, 결국 같은 스틴트에 돌입하면 팀메이트의 앞뒤에 자리를 잡게 됐다. 그러다 보니 간혹 배틀이 있긴 했어도(러셀-해밀턴), 시대가 시대인 만큼 살벌한 휠투휠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물론 페레즈는 사고로 인해 크게 뒤처졌기에 팀메이트와 붙어 달리지 못했다. 이 TOP7 구도를 깰만한 차량이 서킷 내에 존재하지 않았고, 이들끼리 지지고 볶다가 레이스가 끝났다.
8-10위권을 두고는 꽤 사투가 펼쳐졌다. 페레즈가 두 번째 사고로 뒤처진 뒤, 포인트 피니시만큼은 어떻게든 해내는 알론소가 이 순위권 내에서 계속 오르내렸고, 9,10위는 레이스 초반 알파타우리 듀오가 차지하고 있다가, 레이스 후반 페이스가 떨어지며 알핀 듀오가 올라왔다. 약간의 논란과 함께 오콘은 9위, 가슬리는 10위로 레이스를 마쳤으며 11,12위를 로슨, 츠노다가 가져갔다. 13위는 알파로메오의 생존자 저우관위, 14-15위는 하스 듀오(휠켄버그 P14, 마그누센 P15)의 몫이었다.
얘깃거리
결국 에어로 성능순으로 포인트를 벌어 갔다. 물론 페레즈는 애초부터 논외다. 맥라렌은 더블 포디움으로 33점을 벌어가며 4위 애스턴마틴과의 격차를 크게(27점) 줄였고, 페라리도 2위 메르세데스와의 점수 격차를 4점 줄였다. 비록 이번 그랑프리에서 컨스트럭터 챔피언은 레드불로 확정되었지만, 2위와 4위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2위 메르세데스와 3위 페라리의 격차는 20점으로, 아직도 올 시즌이 여섯 라운드나 남은 것을 감안하면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차이다. 반면 4위 애스턴마틴과 5위 맥라렌의 격차는 49점으로, 언뜻 좁히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애스턴마틴의 하향세와 맥라렌의 상승세를 감안하면, 여섯 라운드에서 49점을 줄이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일본 그랑프리 한 방에 27점을 줄이지 않았는가. 만약 지금처럼 알론소의 포인트 외벌이가 계속된다면 여섯 라운드는 차고도 넘치는 기회다.
페레즈의 주행을 예측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당연히 베르스타펜보다 한참 뒤처질 것이고, 다소 좌충우돌할 것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번 레이스처럼 '체코는 못말려'를 찍다가 퇴장할 줄은 몰랐다. 특히 네덜란드 그랑프리처럼 괜찮게 달린 레이스가 꼭 하나씩 끼어있어 더욱 예측을 어렵게 한다. 이번 레이스에서는 스타트 직후 차들에게 둘러싸여 사고, 세이프티카 상황에서 피트아웃 하며 쓸데없이 가속해서 패널티, 누가 봐도 무리한 추월 포인트에서 락업이 걸려 또 사고를 유발했다. 페레즈가 아무리 올 시즌 고전하고 있다 한들, 이런 사고들을 한 번에 칠 거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윤재수 해설위원도 지적했듯, 피트아웃 시 과속과 마그누센 추월 시도는 도저히 페레즈만한 커리어를 가진 드라이버가 저지를 실수가 아니었다.
페레즈는 리타이어를 한 후 뜬금없이 다시 차에 타서 서킷에 복귀하며 많은 이들의 의문을 자아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리타이어 결정 이후 다시 복귀해도 되는 지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윤재수 해설위원은 이 부활(?)을 플랜F, 즉 패스티스트 랩 도전으로 해석했지만 쉽게 이해가 가진 않았다. 아무리 새 소프트 타이어를 달고, 세팅을 새로 했다지만 리타이어 할 정도로 상태 안 좋은 차가 패스티스트 랩 도전을 한다? 경쟁자들보다 26랩어치 연료를 더 짊어진 상태로? 가망은 없어 보였지만, 나도 처음 보는 상황이니 일단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레이스 후 알아보니 페레즈 부활의 목적은 5초 패널티 수행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레이스 중 받은 5초 패널티를 수행하지 않고 리타이어 했기에, 그대로 레이스가 끝난다면 스튜어드(심판)들의 판단에 따라 이 패널티가 다음 레이스에서 그리드 패널티로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다시 페이스에 나갔다가 피트인한 후 5초 패널티를 수행하고는 레이스를 또 종료했다.
덕분에 중계 화면에는 페레즈의 인터벌(앞차와의 간격)이 +6 laps로 표시되었는데, 이 간격이 잘 달리고 있는 차들보다 6바퀴 뒤처진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리타이어한 랜스 스트롤보다 6바퀴 뒤처졌다는 뜻이었다. 선두 베르스타펜과는 26랩 차이가 났다. 공식적으로 페레즈는 43분 10초짜리 피트스탑을 거치고 서킷에 복귀한 것으로 기록됐다. 물론 그래도 보타스의 최고기록(43시간 15분)에는 턱도 없이 모자라다. 그 와중에 르클레르는 페레즈 부활 소식을 듣지 못한 채 레드불 차 한 대를 추월하고는 '방금 베르스타펜 추월했으니 포디움 올라갈 수 있겠지?' 하며 싱글벙글 드라이빙을 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 레드불은 페레즈였다.
알핀은 또 알핀 했다. 잘 달리는 드라이버들을 두고 (또) 이상한 전략을 지시했다는 뜻이다. 알핀의 기행은 익히 알려져 있는데, 오죽하면 별명이 '프랑스 페라리'일 정도다. 그런데 여름휴가 이후 정신을 바짝 차리고 돌아온 페라리를 보면 이제 프랑스 페라리라는 이름값은 알핀에게 너무 무거워 보인다. 보통 알핀이 알핀 하고 나면 오콘과 가슬리는 포인트를 따기 힘들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블 포인트 피니쉬에 성공했다. 전략이 나온 타이밍이 골인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오콘보다 2초 넘게 앞서 9위로 달리고 있던 가슬리는, 체커기를 받기 직전 마지막 코너에서 정지하다시피 속도를 늦춰 오콘을 먼저 통과시키고 10위로 골인했다.
페레즈의 부활 레이스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마지막 랩에서 이렇게 노골적으로 자리를 바꾸는 것도 처음 봤다. 만약 점수차가 큰 상위권이었고, 오콘이 가슬리보다 드라이버 챔피언십 순위가 높았다면 이해할 수 있었다. 메르세데스 강점기 때 보타스와 해밀턴 사이에서 왕왕 있던 일이지 않던가. 물론 그때도 보타스를 세워놓을 지경까지 감속시키는 건 본 적이 없긴 하다. 그런데, 이번엔 9위-10위 자리를 바꿨다. 2점과 1점의 주인을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드라이버 챔피언십 순위는 오히려 가슬리(11위)가 오콘(12위)보다 높다. 가슬리도 억지로 자리를 비켜준 후, 강하게 불만의 제스처를 표출하는 장면이 온보드캠에 잡혔다. 어떤 해명이 나올 지 흥미롭다.
그 외 개인적으로는, 오콘과 가슬리를 너무 얕봤다는 소회를 밝힌다. 알핀은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다. 심지어 운영진 수뇌부가 갈려나간 작년부터 그런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즌 전 기대치(컨챔 3-4위권)에 어울리는 차량 성능은 엄밀히 말해 한 번도 나온 적이 없고, 파워 유닛 관리를 실패로 오콘의 리타이어를 촉발한 게 올 시즌에만 3번이다(영국, 이탈리아, 싱가포르). 이번 그랑프리 연습과 퀄리파잉 세션에서 보인 모습도 썩 인상적이지 않았기에 이번만큼은 동기부여가 충분한 알파타우리가 알핀을 앞설 것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드라이버라는 변수를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애초부터 알핀의 숏런은 알파타우리에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 작은 차이로 인해 Q2냐 Q3이냐가 갈렸을 뿐, Q3컷(P10)과 P14의 랩타임 차이는 0.1초 가량이었다. 사실상 성능차는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들보다 0.2초가량 빨랐던 츠노다의 숏런 능력이 약간 나았다 치더라도 트래픽, 휠투휠, 더티에어 등 변수가 많은 롱런에서 가슬리-오콘의 '짬바'는 후배들의 도전을 가볍게 뿌리치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말하니 두 알핀 드라이버가 말년병장급이라도 되는 것처럼 들리지만, 그들도 96년생으로 여전히 젊다. 나이 순으로 중간 이상이긴 하다.
이번 시즌 알본은 확실한 스텝업을 보여주고 있고, 갑자기 튀어나온 로슨이 너무 잘 타서 그렇지, 츠노다도 성장세에 대한 호평이 자자했다. 반면 가슬리, 오콘의 기량에 관해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들은 이미 포디움을 경험할 정도로 능력을 입증했고, 경력도 다른 이들보다 길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을 어느정도 마쳤고, 여기서 더 성장해 봐야 티가 잘 안 난다는 의미다. 또, 팀도 윌리엄스, 알파타우리보다 확연히 나은 강팀이기에 오히려 드라이빙 능력을 평가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하위권 팀 드라이버보다 '차빨'이 더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 때문에, 두 프랑스 드라이버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은 약간 식은 상태였다. 그런데 알파타우리의 현재이자 레드불의 미래인 드라이버들과 여유롭게 차이를 벌리는 모습을 보고, 가슬리와 오콘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알핀이 알파타우리의 성능과 동급으로 맞춰졌기에 이런 비교가 가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시 능력 입증은 똥차를 타고 하는 게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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