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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스턴마틴 아람코 카그너전트?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F1 팀들의 타이틀 스폰서 훑어보기
    F1과 잡담 2023. 9. 10. 16:07

     F1매니저 2023을 150시간 넘게 플레이했습니다. 전작도 해본 사람으로서, 이게 이렇게 재밌을 줄 몰랐습니다. 2018년 이래 F1은 간간이 기사 정도로 소식만 접해왔는데, 게임 덕에 다시 흥미가 생겨 쿠팡플레이와 넷플릭스를 통해 지난 레이스와 <본능의 질주>를 보고 있습니다.
     
    아껴둔 <본능의 질주> 지난 시즌 에피소드를 보다가, 루이스 해밀턴이 자기 팀명을 제대로 못 부르는 장면을 봤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 정도로 어물거리자, 지켜보던 관계자 중 한명이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하고 알려주는 장면이었습니다. 해밀턴은 그 말을 듣고도 한번에 팀 이름을 외우지 못해 자기 팀 풀네임 부르기를 포기했습니다. 그 장면에 저는 흥미가 동했습니다. 대체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가 무슨 뜻이야?

    벤츠 아니야?

     메르세데스는 애교에 불과했습니다. 애스턴마틴의 풀네임은 애스턴마틴 아람코 카그너전트 포뮬러 원 팀, 알파로메오는 알파로메오 F1팀 스테이크, 알핀은 BWT 알핀 F1팀입니다. 나무위키 F1팀 틀을 보다 보면, 스타벅스 메뉴를 보고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반면 "스쿠데리아 페라리",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 등, 굵고 짧은 이름도 많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가, 일부 팀 이름은 대체 왜 한 편의 서사시처럼 길기만 한가, 그 긴 이름이 무슨 뜻인가, 간략히 조사해 봤습니다. 가능한 한 단어 단위로 의미를 추적했고, 이들 중 F1, 레이싱, 팀 등 모두가 알 만한 일반명사나 고유명사의 의미는 생략했습니다. 순서는 지난 시즌(22시즌) 순위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선 밝히건대 기나긴 이름들을 이루는 단어들은 대부분 기업명이었습니다.

    분명 자동차 회사 이름은 '애스턴 마틴', '알핀'이 끝이다. 그럼 나머지는 뭐야?

    1. 오라클 레드불 레이싱

     
    레드불 레이싱 앞에 붙는 '오라클'도 기업입니다. <매트릭스>와는 무관합니다. 오라클은 B2B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본사는 미국에 있으며 2020년대에 클라우드 컴퓨팅에 집중투자해 급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5억달러를 주고, 2022년부터 5년간 레드불 레이싱 팀 앞에 자신의 이름을 박아넣는 타이틀 스폰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1년에 1억 달러, 한화로는 1337억원입니다.

    Red Bull name new title sponsor in $500m deal

    The Red Bull Formula One team has secured a new title sponsorship worth around $500 million with technology firm Oracle, placing it among the most lucrative commercial deals in sports.

    www.espn.com

    오라클은 레드불 뿐 아니라, 프로 스포츠와 관련한 명명권을 통해 꾸준히 자사를 홍보하고 있습니다. 체이스 센터 완공 전까지 쓰던 NBA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의 홈구장(-2019년) 이름은 '오라클 아레나'였습니다. 당연히 오라클이 명명권을 매입하여 지은 이름입니다. 또, MLB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이름은? '오라클 파크'입니다. 저에겐 아직도 오라클이 이 구장 명명권을 매입하기 이전에 쓰이던 이름, 'AT&T 파크'가 더 익숙합니다.
     
    레드불은 아시다시피 에너지 음료 회사입니다. 수상할 정도로 차를 잘 만들긴 하지만, 그 정도가 좀 심해서 메르세데스나 페라리보다 잘 만들긴 하지만, 일단 음료 회사입니다. 지난 2022시즌에도 2위 페라리를 꽤 큰 격차로 따돌리며 우승했고, 올해는 더 미친 성능의 차량을 가져와 작년보다도 훨씬 빠른 페이스로 점수를 쌓고 있습니다. 후반기 10라운드가 남았지만, 많은 팬과 전문가들이 올해 더블 챔피언은 레드불과 베르스타펜으로 확정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동감합니다.

    음료 회사에 왜, 어떻게 '파워트레인'이 붙는 걸까? 그리고 왜 그게 메르세데스보다 빠른 걸까?

    2. 스쿠데리아 페라리

     
    근본 넘치는 이름입니다. 단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스쿠데리아'는 '마굿간'을 뜻하는 이탈리아어고, '페라리'는 사람 성입니다. 스쿠데리아라는 단어의 원래 의미는 마굿간이 맞지만, 꽤 오래 전부터 확장되어 '팀'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만 놓고 생각해 보면 '마굿간'이 왜 '팀'이 된 건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뒤에 '페라리'를 붙이면 어렵잖게 그 과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페라리의 상징은 말입니다. 사실 페라리 뿐만 아니라, 많은 자동차 회사나 모델이 말을 상징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해하기 어렵잖은 감성입니다. 인류 역사상 사람이 탈것으로 가장 오래 활용해 온 수단이면서도, 단순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가진 존재가 말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이 자리를 대체한 게 자동차임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자차를 두고 '애마'라는 표현을 쓰니, 이러한 공감대는 문화권을 불문하고 편재합니다. 마굿간은 그런 말이 태어나고, 건강을 체크하고, 출격 직전까지 대기하는 공간입니다. 차가 똑같은 과정을 거치는, 레이싱 팀 본부가 마굿간이라 불리게 된 건 오히려 필연에 가깝습니다. 

    말과 자동차의 연관성, 레이싱 본부와 레이스카의 연관성.

    페라리는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든 사람, 엔초 페라리의 성입니다. 모르는 사람이 없는, 굴지의 슈퍼카 브랜드지만 그 시작은 레이싱 팀이었습니다. 엔초 페라리는 그 스스로가 레이서였던 사람으로, 알파로메오 팀 소속으로 당시(F1 창설 이전) 활동한 인물입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팀을 만들어 독립했고, 그 팀이 스쿠데리아 페라리였습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자금 조달을 위해 양산차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의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3. 메르세데스 AMG 페트로나스 포뮬러 원 팀

     
    1929년, 자동차 회사 메르세데스와 자동차 회사 벤츠가 합병하여 메르세데스 벤츠가 되었고, 한국에서 흔히 벤츠라 불리는 그 회사가 되었습니다. 벤츠는 설립자의 이름인 반면, 메르세데스는 의외로 설립자 이름이 아닌데, 메르세데스의 설립자 이름은 에밀 예리네크입니다. 메르세데스는 에밀 예리네크의 딸 이름이라고 합니다. 한국에도 비슷한 제과 회사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핫x부리'를 만드는 세x식품이었던가.
     
     AMG는 메르세데스 그룹에 속해있는 고성능 차량 개발 부서입니다. 마이바흐는 뭔데? 라는 의문에 대해 '현대차 대입법'으로 답해 보겠습니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현대자동차라면 마이바흐는 제네시스, AMG는 현대 N에 가깝습니다. 물론 현대N은 일종의 라인업에 불과하고 별개 부서가 아닌 것으로 알고 있지만, 방향성은 그러합니다. 즉, AMG와 현대N은 안락한 주행을 선호하는 프리미엄 세단보다는, 엔진과 주행성능에 집중하는 브랜드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마이바흐 살 돈으로 AMG 샀다고 해서 '그돈씨' 소리를 듣는 경우가 극도로 적다는 점입니다. 어쨌든, 그래서 수많은 벤츠 계열사 중 AMG가 F1팀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할 거라면, 최고의 승차감을 만드는 전문가들보다는 최고의 속도를 내는 전문가들을 투입하는 게 사리에 맞아 보입니다.

    메르세데스AMG의 차량은 한국에도 많이 들어와 있다.

    페트로나스는 에너지 회사입니다. 말레이시아 국영 기업으로, 말레이시아 내 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독점. 멋진 말입니다. 그 덕에 통신, 에너지, 물류 등 사회기반시설과 관련된 인프라 산업 부문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프라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인프라의 규모를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벤틀리 인프라스트럭처 500' 차트에서는, 2022년 전체 66위를 기록했습니다. 최근 메르세데스는 이 회사와 명명권 계약을 2년 연장하여, 연간 7500만 달러(약 1000억원)를 후원받을 것이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https://ko.bentley.com/company/top-infrastructure-owners/

    상위 인프라 소유주 | 벤틀리시스템즈 | 인프라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회사

    최고의 인프라 소유자

    ko.bentley.com

    페트로나스의 정식 이름이라고 한다.

     전술한 '벤틀리 인프라스트럭처 500'은 소유하고 있는 인프라만을 기준으로 하기에, 그 순위가 반드시 기업 규모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해당 차트 1위는 미국 정부, 12위는 한국전력입니다. 66위 페트로나스는 물론 큰 회사지만, F1 팀들과 관련된 에너지 회사 중에는 말석을 다투고 있습니다.
     

    4. BWT 알핀 F1팀

     
     F1팀과 네이밍 계약을 맺은 기업들의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포브스 2000대 기업 리스트와, 벤틀리 500대 인프라 기업 리스트를 띄워놓고 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양쪽 모두에서, BWT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분명 F1팀 이름에 붙을 정도면 규모가 꽤 될 텐데, 대체 뭐 하는 회사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답은 나무위키와 구글에 있었습니다. 정수기 회사입니다. BWT라는 이름은, Best Water Technology의 준말이었습니다.
     
     가정이나 회사 등에서 흔히 사용되는 기계식 정수기가 아닙니다. BWT의 경쟁사는 '브리타'입니다. 유럽이나 아메리카 가정에서 주로 사용하는 정수기로, 물통과 결합한 채 수돗물을 받으면, 활성탄을 이용한 필터로 정수하는 방식입니다. 페트로나스, 오라클 같은 기업들과는 주는 느낌이 다릅니다. 첨단 방식의 정수가 아니라는 점, 시장 규모 자체도 과연 이들과 비교가 될까, 하는 의문이 드는 점에서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BWT와 알핀 F1팀의 네이밍 계약 규모를 인터넷으로 찾아볼 순 없었지만(공개된 적 없을 가능성이 큼), 간이 정수기 회사로서는 과감한 투자가 아닐까, 추측만이 가능합니다. 세계 정수기 시장의 규모는 다 합쳐도 2022년 기준으로 463억 달러, 상기한 오라클의 연간 매출(2022년 6월-2023년 5월)은 499억 달러입니다. 회사 대 회사가 아니라, 산업 대 회사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거. 한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여담으로, BWT는 2018년부터 F1팀의 네이밍 스폰서를 담당하고 있는데, 중간에 한 번 팀을 옮긴 바 있습니다. 2017년부터 '포스 인디아'의 스폰서로 활동하던 BWT는 2019년 '포스 인디아'가 '레이싱 포인트'로 팀명을 변경하자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으며 'BWT 레이싱 포인트'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애스턴 마틴이 레이싱 포인트를 인수하자 그 이듬해인 2022년부터 알핀 쪽으로 스폰서 계약을 전환했습니다.
     
     알핀은 르노 그룹 산하의 자회사입니다. 프랑스를 본부로 하여 1955년 설립되었고, 처음부터 경주용 차를 만들던 회사입니다. 1973년 르노에게 인수되어 1995년까지 자사의 차를 생산하다 이내 생산 중단, 르노의 자동차만을 생산하다 2017년 다시 알핀의 이름으로 A110을 생산하며 부활했습니다. 알핀이 부활하여 다시 저변을 넓히고 있는 이유로는, 르노 경영진의 선택을 꼽을 수 있습니다. 메르세데스 AMG, BMW M, 현대자동차 N처럼, 르노의 프리미엄 스포츠 브랜드로 알핀이 간택된 것입니다. 르노가 선택한 경영난 타개책인 셈인데, 2021년 르노 F1팀의 이름을 알핀으로 바꾸며 그런 의지를 천명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선택이 재무제표 상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확인이 어렵지만, 우선 알핀 브랜드에 대한 세계 자동차 팬들의 호감은 날로 쌓여가고 있는 듯합니다.

    알핀 부활의 신호탄이었던 A110.

    5. 맥라렌 F1 팀

     
     맥라렌 레이싱이라는 이름과 혼용되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등록명은 맥라렌 F1팀입니다. 스쿠데리아 페라리만큼이나 짧고 굵은 팀명입니다. 하지만 영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영국 팀이기에, 팀명에서 이탈리아어를 찾을 순 없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혹은 추측가능하다시피, 맥라렌은 사람 성입니다. 동시에 슈퍼카 브랜드명이기도 합니다. 맥라렌이라는 팀 이름의 기원은, 페라리와 아주 유사합니다. 레이싱 드라이버가 팀을 만들고, 팀을 유지하기 위해 양산차를 만들다가 슈퍼카 회사가 되었습니다. 맥라렌의 창업주이자 초대 팀 오너는 브루스 맥라렌으로, 엔초 페라리보단 세대가 늦어 F1에서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F1 챔피언십 원년인 1950년, 엔초 페라리는 52세, 브루스 맥라렌은 13세였습니다. 1956년, 19세에 레이싱을 시작한 브루스 맥라렌은 F1팀 쿠퍼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쿠퍼의 팀 운영 의지가 불분명해지자 자신이 팀을 만들어 독립했습니다. 1963년이었고, 맥라렌 F1팀의 시작이었습니다.

    맥라렌 팀의 시초, 브루스 맥라렌

     브루스 맥라렌은 원래부터 맥라렌을 양산차 브랜드로 키울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1970년 테스트 주행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고 맙니다. 난항을 겪게 된 맥라렌의 양산차 브랜드화 프로젝트는 1985년 겨우 수습되어, 법인의 모습을 갖춘 현재의 슈퍼카 회사 맥라렌이 탄생하게 됩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꾸준히 F1을 위시한 다양한 레이스에는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로 따지면 1939년 설립된 페라리, 1931년 포르쉐는 물론 1948년 로터스, 1963년 람보르기니보다도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레이싱 팀으로서의 근본으로 따지자면 페라리 말고는 딱히 밀리는 팀이 없습니다.
     

    6. 알파로메오 F1팀 스테이크

     
     알파로메오는 어찌 보면 페라리보다도 더 근본을 갖춘 이름입니다. 1910년 설립된 회사로, 초창기 이름은 ALFA, Anonima Lombarda Fabrica Automobilli였지만 1915년 니콜라 로메오가 사명을 '알파로메오'로 변경한 뒤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알파로메오는 현재 스포츠카 라인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국영화되어 버스나 밴을 생산하기도, 다시 민영화된 후에는 소형차를 생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터스포츠에도 참여해 왔습니다. 1920년대부터 F1 챔피언십의 전신 격인 월드 그랑프리에 참여해 왔는데, 이것조차 1914년 그랑프리 참여 계획이 1차 세계대전으로 백지화된 탓에 연기된 결과였습니다. 현재 F1 참가팀 중 최고의 근본을 자랑하는 페라리의 창업주, 엔초 페라리조차 F1 설립 이전 알파 로메오의 드라이버였고, F1 초창기 월드 챔피언을 5회 석권한 최고의 드라이버 후안 마누엘 판지오도 이 팀의 드라이버였습니다.

    알파로메오와 함께 F1 월드 챔피언에 올랐던 후안 마누엘 판지오.

     하지만 현재 알파로메오를 F1 최고의 근본팀이라 보기는 어려운데, 알파로메오가 F1에 꾸준히 참여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950년부터 52년까지 판지오와 함께 F1을 지배하던 알파로메오는 이듬해부터 F1에서 철수했고, 1979년에 재참가를 했지만 초창기의 명성에 미치지 못하며 중하위권에 머무르다 1985년 다시 철수합니다. 2019년, 알파로메오라는 이름이 다시 F1에 등장했지만 이탈리아를 본부로 하던 과거의 워크스 팀이 아니라, 스위스 팀 자우버의 시설과 인원을 승계하는 커스터머 팀이 되었습니다. 애초에, 알파로메오의 기술과 자본으로 팀을 운영하는 계약이 아니라 이름만 빌려주는 타이틀 스폰서 계약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알파로메오는 알파로메오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팀의 정체성은 여전히 자우버입니다.
     
     스테이크는 다시 기업명입니다. 원래 유럽 스포츠계는 베팅 사이트 홍보에 관대합니다. 과거 챔피언십 리그라 불렸던 EFL, EPL의 하위 2부리그의 스폰서는 '스카이벳'이 맡고 있고, 지난 22/23시즌 참여했던 EPL 팀 중 웨스트햄, 뉴캐슬, 브렌트포드, 사우스햄튼, 에버튼, 리즈가 유니폼 전면에 스포츠 베팅 사이트의 로고를 부착하고 경기를 소화했습니다. 이들 중, 에버튼의 스폰서를 맡았던 곳이 스테이크닷컴이었습니다. 알파로메오 F1팀의 타이틀 스폰서 스테이크와 같은 곳입니다.

    에버튼의 유니폼 스폰서도 맡았던 스테이크닷컴.

      스테이크의 특징이라면, 암호화폐를 사용한다는 점이 있습니다. 사이트 안내에 따르면 UFC, EPL, NBA, NFL, CFL, MLB, 세리에 A, 라 리가, 리그 오브 레전드, 도타2 등 종목과 국가를 가리지 않는 스포츠 베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또, 카지노 게임도 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스포츠 베팅과 암호화폐 양쪽 모두 제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라서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어렵지만, 일단은 그러합니다. 스테이크는 알파로메오 팀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면서 1억 4천만 호주 달러, 한화 약 1200억원의 비용을 지불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박 사이트는 링크를 첨부할 수 없는 듯하다. 바람직한 방침이다.

     어원을 따지자면, 고기 요리와는 무관합니다. 스펠링이 steak(고기), stake(도박)로 서로 다릅니다. stake는 보통 '말뚝'이란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돈이 걸리면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기본형은 stakes입니다. 이 단어는 '판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간혹 '돈걸기', 즉 '돈 거는 행위 자체'라는 의미를 갖게 되기도 하는데, 보통 돈을 건다는 것 자체가 뭔가 흥행이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흥행', '대회'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경마나 그 파생 컨텐츠를 즐겨보신 분들에게 익숙할 '스테이크스'라는 단어의 기원이 됩니다. 반면 스테이크닷컴은 s가 빠져서, 스테이크스닷컴이 아닌 스테이크닷컴을 사명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 경우는 stakes를 동사로 활용하여 stake, 즉 '판돈을 올리다' 내지는 '돈을 걸다'라는 의미로 쓴 것으로 추측됩니다.
     

    7. 애스턴 마틴 아람코 카그너전트 포뮬러 원 팀

     
     드디어 주인공이 나왔습니다. 란초다스 샤말다스 찬차드에 버금가는, 한 편의 시 같은 이름입니다. 먼저 애스턴 마틴은 스포츠카 회사입니다. 007 시리즈의 본드카로 유명합니다. 맥라렌과 같이 영국 국적의 회사로, F1팀의 본부 역시 영국에 두고 있습니다. 1913년 설립된 회사로, 설립자의 이름은 애스턴 마틴이 아닙니다. 리오넬 마틴이 설립자의 이름이고, 애스턴이란 이름은 회사의 소재지에서 열린 대회, '애스턴 힐 스피드 힐클라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애스턴 마틴은 꽤 오랜 기간 부침을 겪었는데, 두 차례 세계대전을 겪기도 했고, 전간기에는 재정난에 시달려 제대로 생산, 판매를 하지 못했으며 1950년부터 서서히 상황을 개선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2020년에는 F1의 대표 페이드라이버 랜스 스트롤의 아버지인 로렌스 스트롤이 애스턴 마틴의 지분을 인수하여 회장에 취임하며 화제를 모은 바도 있습니다. 스폰서의 아들을 모시다가 하루아침에 회장님의 아들을 모셔야 하는 레이싱 포인트 직원들의 심정이 어땠을 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들의 성적이 시원찮자 회사째로 인수를 해버린 로렌스 스트롤(오른쪽)

     아람코는 세계적인 에너지 기업입니다. 풀네임은 사우디 아람코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국영 기업입니다. 2019년 기업 공개를 통해 주식상장을 하면서 시가총액 전세계 1위-4위를 오르내리고 있으며, 사우디 왕조가 지분 98.5%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회사와 시가총액 순위에서 경쟁을 했거나, 하고있는 회사들에는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이 있습니다. 위에서 페트로나스의 정체를 살펴보기 위해 '인프라 500' 차트를 살펴봐야 했는데, 아람코는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포브스 2000대 기업' 순위를 보면 됩니다. 당분간 1위 아니면 2위에 있을 것이고, 순이익 기준으로는 세계 최고를 기록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혼자만 자릿수가 다른 걸로 봐서 뭔가 버그가 일어난 것 같다.

     아람코의 가장 주요한 돈줄은 정유 산업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시작은 미국 회사였습니다. 석유왕 록펠러의 유산인 엑슨, 모빌(현재의 엑슨모빌), 스탠다드오일 캘리포니아(현재의 쉐브론) 등이 참여하여 사우디에 아람코가 설립됩니다. 아람코는 사우디의 풍부한 유전을 개발하여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회사가 되었고, 그 비중과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됩니다. 그러자 사우디 내에서 아람코를 국유화하자는 여론이 점점 강해졌고, 20여년에 걸친 국유화 협상 끝에 1980년, 사우디 정부가 아람코 지분 100%를 차지하여 완전 국유화를 이루게 됩니다. 아람코의 수많은 자회사들 중 일부는 한국의 쌍용정유 지분도 인수하여, 현재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주유소 S-OIL의 모회사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현대오일뱅크의 지분 일부를 가지고 있는 등 국내 에너지 기업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카그너전트는 미국 국적의 IT 기업입니다. 구글 검색결과는 이 회사의 주요 사업을 '정보기술 및 컨설팅' 이라고 제시하고 있는데, 한번에 와닿지는 않습니다. 홈페이지를 가 보니, 뱅킹, 헬스케어, 미디어, 기업 플랫폼, 교육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무형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같은, 무슨 사업인지 아리송한 분야가 있지만 아무튼, 분기마다 48억 달러(약 6조 5천억원)의 매출과 4-6억 달러(약 5000-8000억원)의 순수익을 기록하고 있는 건실한 기업입니다. 역시 세상에는 제가 이해할 수 없는 시장이 너무나 많습니다. 카그너전트는 F1뿐 아니라 LPGA컵도 후원하며 (카그너전트 파운더스 컵) 저변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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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머니그램 하스 F1 팀

     
    <본능의 질주>의 주인공 드라이버가 다니엘 리카도라면, 주인공 팀은 하스, 주인공 감독은 귄터 슈타이너입니다. 영세한 팀이니만큼 이 팀에도 타이틀 스폰서가 붙었습니다. 해외송금 서비스를 맡고 있는 '머니그램'으로, 3년간 매 시즌 2천만 달러(약 246억원)을 하스 팀에 지불한다고 합니다.
     
     머니그램은 은행 계좌 없이 이름, 주소, 전화번호만으로 해외 송금이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법인이 아닌 개인만 이용가능하고, 송금한도가 있는 등 개인 간 거래에 집중하고 있는 송금 플랫폼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봤던 '오라클'이나 '카그너전트'처럼, 플랫폼 사업은 B2B를 제공하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로 성장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머니그램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후원 액수도 적습니다.

    분명 크고 건실한 기업인데, 왠지 좀...

    '하스'는 사람 이름 '진 하스'에서 따왔습니다. 진 하스는 미국의 사업가로, 하스 오토메이션의 설립자이자 사장, 단독주주입니다. 그렇다면 하스 오토메이션은 어떤 회사인고 하니, CNC 공작기계를 제조하는 회사로 미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고 합니다. CNC 공작기계란 컴퓨터로 정밀하게 제어되는 공작 기계로, 정밀 부품이 필수적인 군사 및 첨단 제조 산업 분야에서 널리 사용되는 기계입니다. 저도 막연히 이런 게 있겠지, 하고 생각만 했지 그 이름이 CNC인지는 이번 기회에 알게 됐습니다. 아무튼, 하스는 그런 회사이고, 그런 회사를 만든 사람입니다.

    하스 회사와 하스 팀을 만든 진 하스

    9.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

     
     스쿠데리아는 마굿간, 팀이라는 의미로 앞서 스쿠데리아 페라리 때 의미를 밝힌 바 있습니다. 알파타우리는 레드불에서 2016년 런칭한 패션 브랜드로, 본가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에 본사를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스쿠데리아 알파타우리의 본부는 이탈리아에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 팀이었던 미나르디 F1팀의 본부와 역사를 계승했기 때문입니다. 알파타우리는 분명 패션 브랜드지만, 레이싱 팀 굿즈 말고 회사의 정식 제품은 현재 해외직구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소문으로는 오스트리아 내에만 매장이 있다고 하는데, 이런 소극적인 행보가 레드불급 회사의 판매전략과는 어울리지 않아 레이싱 하려고 세운 페이퍼 컴퍼니가 아니냐는 농담이 조금씩 나올 정도입니다.

    뭐 옷이 있긴 있는데, 레이싱 굿즈 수준 아닌가 싶기도 하다.

    10. 윌리엄스 레이싱
     
     이 팀도 만만찮게 이름이 짧고 굵습니다. 윌리엄스란, 이 팀을 만들고 운영했던 설립자와 가문의 성입니다. 프랭크 윌리엄스는 1942년에 영국에서 태어나, 1966년까지 모은 돈으로 '프랭크 윌리엄스 레이싱 카'를 설립하여 F1에 참가합니다. 본인이 레이서로 활동했던 브루스 맥라렌이나 잭 브라밤과는 달리, 프랭크 윌리엄스는 스스로 운전을 하진 않았고, 팀의 운영에 전념했습니다. 그는 1986년 교통사고에 휘말려 휠체어에 의지해야 거동이 가능하게 되었음에도 모터스포츠에 헌신했고, 1999년 기사 작위 등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 후, 2012년까지 팀 윌리엄스의 F1 이사회에서 활동한 뒤, 딸 클레어 윌리엄스에게 자신의 자리를 물려주고 팀 운영에서 손을 뗐습니다. 윌리엄스 가문은 2019 시즌까지 팀을 운영하다가, 2020년 미국계 투자회사에 지분을 매각하고 윌리엄스 팀과 결별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름만은 여전히 윌리엄스로 남아 F1그랑프리를 누비고 있습니다. 2021년, 프랭크 윌리엄스 경은 병원에서 79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윌리엄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켜온 프랭크 윌리엄스 경

     살펴봤듯, F1팀의 이름이 길어지는 이유는 대부분 기업명을 붙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이 돈입니다. 수 년간 몇 음절 되지도 않는 회사 이름을 팀 이름에 붙이는 대가로,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크게는 수천억원의 자본이 움직입니다. F1은 원래 전통적으로 쩐의 전쟁이고, 누군가는 그게 본질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이번 게시글은 타이틀 스폰서만을 다루고 있지만, F1 팀들이 다른 방식으로 벌어들이는 광고비 수익도 천문학적입니다. 어쩌면 F1이 매력적인 데에는, 평생 벌어도 근처에도 못 갈 거대 자본이 맞부딪치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알파타우리는 레드불과 동일한 자본으로 움직이기에 제외하고) '스쿠데리아 페라리', '맥라렌 F1팀', '윌리엄스 레이싱'의 짧고 굵은 이름들은 더욱 낭만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는, 전통적인 이름을 그대로 지켜내면서도 다른 팀과 경쟁 가능하도록 팀을 운영중이라니, 대체 다른 방식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나 많은 건가, 하는 경외감이 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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