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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23 스토리모드 [브레이킹 포인트2] (준)완전 번역 기념, 인물과 모티브 살펴보기F1과 잡담 2023. 11. 12. 21:33
대장정이었습니다. 그 결과 퀄리티에는 어느정도 만족합니다. 물론 부족한 점이 수두룩하겠지만 말입니다.
게임 <F1 23>의 스토리 모드, '브레이킹 포인트 2' 스토리 컷씬 외 기타 장면들에 한글 자막을 달아 업로드했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의 초반부가 꽤 재미있었기에, 이 재미있는 걸 저만 보기엔 좀 아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영자막과 대사를 기반으로, 한글 자막을 제작해 편집하고, 영상으로 업로드했습니다. 스토리 컷씬만 번역한 영상은 유튜브 내에 이미 있었습니다. 저는 거기에 더해 게임 중 확인해야 하는 뉴스 기사, 인터뷰 질문, 메일 내용, 통화 내용 등을 추가적으로 번역했습니다. 당연히 컷씬 번역도 새로 했습니다. 한글패치 한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중간중간 몇 개 기사와 SNS번역을 빼먹은, 분량 기준 (준) 완전번역입니다. 퀄리티 기준으로도, 완전을 추구했지만 어쩔 수 없는 실력의 한계로 인해 (준)완전번역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스토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재미있었냐고 묻는다면, 노 코멘트 하겠습니다. 재미 없다고 하면 조회수에 악영향을 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이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어느정도는 답을 해버린 것과도 같아 보입니다.
어쨌든, 이 번역 작업에 못 해도 열흘은 매달려 있었으니, 3시간짜리 영상 하나만 건지고 끝낼 순 없습니다. 열흘짜리 번역과 편집, 4시간 20분에 걸친 인코딩, 60분에 걸친 업로드, 8시간에 걸친 (유튜브 스튜디오 내) HD변환을 거쳐야 했으니, 본전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를 소개하고,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모티브 인물들을 비교하는 시간입니다.
<브레이킹 포인트>란?
§EA스포츠식 스토리 모드
F1 게임 시리즈의 스토리 모드입니다. F1 21에서 <브레이킹 포인트> 1편을 플레이할 수 있었고, 한 시리즈를 건너뛴 뒤 F1 23에서 <브레이킹 포인트2>로 돌아왔습니다. 둘 다, 한글화 되지 않은 영어 게임입니다. EA 게임으로 보자면, <피파>(현 EA) 시리즈가 피파17부터 19까지 제공했던 '저니 모드'와 가장 유사합니다. 2K의 마이커리어 모드에도 스토리 요소가 있지만, 그 쪽과는 목적이 좀 다릅니다. 2K는 선수를 키워 리그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게 모드의 목적인 반면, <브레이킹 포인트>나 '저니 모드'는 제작진이 준비한 스토리를 감상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주로 컷씬을 통해 주인공과 주변인물들의 스토리가 진행되고, 중간중간 플레이어는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그들의 활약을 대신해줄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게임 파트가 스토리 파트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비주얼노벨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브레이킹 포인트>는 '저니 모드'처럼, 공식 라이센스와 선수들의 성명, 초상권 등 본인들이 가진 권리를 적극 활용합니다. 1편에서 플레이어는 F1의 신인 드라이버, 2편에서는 가상의 11번째 팀 코너스포트 팀의 일원이 되어 '레드불의 베르스타펜', '페라리의 르클레르'와 휠투휠 대결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점은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축구 클럽에 영입되어, 월드클래스 선수들과 팀을 이루고, 또다른 월드클래스 팀을 상대하게 되는 '저니 모드'와 같습니다.
한편 '저니 모드'와 다른 점도 생겼습니다. 라이센스 활용이라는 접근 원리는 같지만, 종목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축구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EPL 팀의 한 선수가 되면, 각 팀의 1군 멤버가 25명이라 치고 20개 팀, 즉 500명 중 한 명이 되는 겁니다. NBA라면, 각 팀이 활용하는 주전+세컨 유닛을 10명이라 잡아도 30개 팀의 10명 스쿼드, 300명 중 한 명이 되는 겁니다. 매든(NFL)은 더합니다. 미식축구는 공격팀, 수비팀, 스페셜팀 등, NFL이라면 팀마다 적어도 40명이 넘는 스쿼드가 있어야 하고, 팀도 32개입니다. 플레이어는 그 중 한 명입니다. 반면 F1에 누군가 신생팀으로 참가한다면, 그 신생팀의 비중은 산술적으로 11팀 중 1팀입니다. 우수리 떼고 9%입니다. 드라이버 한 명이 된다고 해도, 22명 중 1명입니다. 4.5%입니다. 그래서, 다른 종목 게임보다 좀더 플레이어의 영향력이 큽니다. 전반적으로 플레이어 팀의 일거수일투족이 업계 전체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선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점이 다른 종목과 나름의 차별화를 이룹니다.
§<브레이킹 포인트>의 줄거리
<브레이킹 포인트> 두 편을 관통하는 공통 주제는 'F1에서 살아남기'입니다. 1편은 신인 드라이버 '에이든 잭슨'이 F1에 적응하고 살아남는 이야기, 2편은 신생팀 '코너스포트'가 살아남는 이야기입니다. 에이든 잭슨은 2편에도 나옵니다. 저는 F1 게임 시리즈를 23으로 시작했기에, F1 21에 나온 <브레이킹 포인트 1>은 '유튜브 에디션'으로 감상했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 1>은 컷씬을 연속해서 편집한 40분 남짓한 영상으로 감상했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무리하게 소감을 얘기하자면 K-지상파 드라마 순한맛입니다. 여기서 지상파 드라마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지상파 드라마가 이미 케이블,종편,OTT 드라마의 순한맛이기 때문입니다. 진라면으로 치자면 '순하디 순한맛'에 가까울 겁니다. <브레이킹 포인트> 1편에서는 F1이라는 무자비한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물들이 나름의 암투를 벌입니다. 하지만, K드라마로 다져진 한국인에게 '암투'의 허들은 아주 높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 1>은 흡사 초등학교 반장선거 경쟁을 보는 듯합니다.
반면 최신작인 <브레이킹 포인트2>는 좀더 현실적인 면이 부각됩니다. 1편의 스토리는 기반이 잘 갖춰진 중하위권 팀에 플레이어가 신인 드라이버로서 입성하는 내용입니다. 반면 2편에선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신생팀의 일원으로써, 드라이버와 운영진이 함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넷플릭스 <본능의 질주>를 많이 참고한 듯한, 신생팀의 고충이 잘 드러나 있는 초중반부입니다.
§모티브 탐색
최훈 작가의 <클로저 이상용>을 좋아합니다. 그의 'GM 세계관' 작품들을 전부 챙겨보고 있고, 그들 중 <클로저 이상용>이 발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웹툰이 됐건, 웹소설이 됐건 다양한 스포츠물을 즐겨 보시는 독자분들이 계실 겁니다. 대다수 스포츠물에서는 웬만해선 현실의 인물과 팀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없습니다. 그러니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특정 팀과 선수를 모티브로 가상의 팀과 선수들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GM 세계관에서 LG트윈스 대신 서울 게이터스, 이대호 선수 대신 김성욱 선수가 등장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창작물 속 등장인물과, 그들의 모티브가 된 현실 인물을 비교하는 것은 스포츠물 소비자에게 큰 즐거움입니다. 이 과정에서 창작자가 현실 인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고, 그의 해석과 나의 해석을 비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 내적으로는 '모티브가 있다'라는 것 자체가 현실성의 마지노선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냐'라는 비판에 가장 효과적인 방패는 '진짜 현실에서 있었던 일 맞다'입니다. 더크 노비츠키의 10-11 시즌 '노순신'급 퍼포먼스와 서사는 어느 스포츠 웹소설의 최종장에 갖다 놔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인공이 우승한다는 클리셰를 깨고 싶다면 19-20 시즌 지미 버틀러의 서사와 퍼포먼스를 갖다 써도 됩니다. 여기서 등장인물들과 팀의 이름만 바꾸면, 아무도 표절 시비를 제기하지 않을 겁니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삼는 건 이렇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물 등장인물들의 모티브를 찾는 것은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습니다.
§인물 비교
1. {<브레이킹 포인트 2> 작중인물, 이하 '브'} 다비도프 버틀러 vs.{현실 F1 인물, 이하 'F1'} 로렌스 스트롤
다비도프 버틀러
다비도프 버틀러는 영국을 본산으로 한 다국적 대기업 '버틀러 글로벌'의 총수입니다. 버틀러 글로벌은 <브레이킹 포인트 2>의 주인공들이 활약하는 '코너스포트 레이싱 팀'의 타이틀 스폰서를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너스포트의 풀네임은 '코너스포트 버틀러 글로벌 레이싱 팀'입니다.
지난 게시글에서 F1팀의 타이틀 스폰서에 대해 알아본 바 있습니다. F1 팀의 이름에 자기 회사 이름을 달기 위해서는, 연간 최소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금액이 들어갑니다. 작중 입지를 보자면, 버틀러 글로벌의 규모는 아무리 작게 잡아도 현실의 '머니그램(23시즌 최소규모 네이밍 스폰서 계약)'보다는 커 보입니다.그러니까 웬만한 부자의 수준은 한참 뛰어넘었다는 겁니다. 물론, 다비도프 버틀러를 로렌스 스트롤에 비교하는 이유는, 단순히 부자라서가 아닙니다. 다비도프 버틀러는 팀의 운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합니다. 팀원에게 전체 메일을 보내 독려(를 가장한 압박)를 하기도 하고, 레이스 전략 회의에도 들어옵니다. 그랑프리를 앞두고 팀의 전략 보고서를 요청하기도 합니다.
일개 스폰서임에도, 그가 다소 월권을 해 가며 팀 운영에 관여하는 이유가 있다면 자신의 아들 데본 버틀러가 팀의 드라이버로 활약하고 있어서입니다. 아들이 실력과 멘탈 이슈로 갈등을 빚는 한이 있더라도, 다비도프는 아들이 F1에서 자리잡기를 바라며 웬만해선 그를 감싸려 합니다.
로렌스 스트롤
로렌스 스트롤은 캐나다 태생 1959년생 패션 사업가로, 세계적인 대부호입니다. 그가 연관된 패션 브랜드만 하더라도 랄프 로렌, 피에르 가르뎅, 타미 힐피거, 마이클 코어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번 돈을, 모터스포츠에 재투자 하고 있습니다. 2018년 시즌 중 영세했던 F1팀, '포스 인디아'를 인수하여 이듬해부터 '레이싱 포인트'로 이름을 바꾼 뒤, 전폭적인 지원을 쏟아부어 컨텐더 팀 못잖은 시설을 갖춘 것이 유명하고, 2020년에는 애스턴마틴까지 인수해 현재는 애스턴마틴 포뮬러 원 팀의 오너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팀의 오너라는 개념 자체가 작금의 F1엔 흔치 않습니다. 하스의 진 하스와, 애스턴마틴의 로렌스 스트롤 외에는 개인의 소유하에서 굴러가는 팀은 F1에 없습니다. 윌리엄스조차 2020년 기업에게 팀을 매각하며 개인 소유의 팀은 상기한 두 팀만이 남았습니다. 이들 중에서도(윌리엄스 가문 포함) 로렌스 스트롤은 독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넷플릭스 '본능의 질주' 때문입니다. 진행 패널들이 그를 성과지향적인 야심가로 포장했고, 이어지는 팀 회의 장면에서도 팀 관계자 모두가 그를 어려워하는 것처럼 그렸습니다. 그의 화법 자체에도 세계적인 사업가답게 단호하고 명료한 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넷플릭스가 구축한 로렌스 스트롤의 빌런같은 면모를, <브레이킹 포인트2>가 차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로렌스 스트롤은 아들을 향한 부정(父情)으로도 유명합니다. 다비도프 버틀러와 또 하나의 공통점입니다. 그는 아들 랜스 스트롤을 F1 드라이버로 키우기 위해 900억원 수준의 지원을 해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거기다, 아들이 F1 데뷔한 이후엔 '진정한 투자'를 시잘하는데, 랜스 스트롤이 데뷔한 윌리엄스의 훈련 시설과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했을 뿐 아니라, 2018년에는 F1팀 하나를 아예 통째로 인수해서 드디어 팀 오너가 됩니다. 당연히 시트 한 자리는 아들 차지였습니다. 2020년에는 모터스포츠계의 빅 네임이자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로 유명한 애스턴마틴까지 인수하며 F1에 더욱 단단한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후에도 월드 챔피언 출신 드라이버들을 영입하는 등, F1에서 가장 활동적인 큰손으로 활동중인데, 그의 주도 하에 팀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바뀌지 않는 게 있다면, 아들의 시트입니다. 2023시즌 중반 이후, 랜스 스트롤이 극심한 부진을 겪음에도 '운이 안 좋았다', '적응 중이다', '내년에는 달라질 것이다'라며 무한 신뢰를 보내는 모습이 그의 부정을 대표합니다.
2. {브} 캐스퍼 아커만 vs.{F1} 키미 라이코넨
캐스퍼 아커만
캐스퍼 아커만은 네덜란드 출신 베테랑 F1드라이버로, <브레이킹 포인트> 1편에서 주인공 에이든 잭슨의 팀 동료로 활약합니다. 그의 뛰어난 실력은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런 평가를 반영하는 별명도 있습니다. '플라잉 더치맨'입니다. 1편에서 그는 뛰어난 실력에 비해 약간 부족한 사교성을 보여주고, 그 때문에 에이든과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하지만 은퇴를 결심한 2021 시즌, 아커만은 베테랑다운 인품을 보여주며 에이든과 화해하고, 모두의 존경을 받으며 화려하게 은퇴하는 데 성공합니다. <브레이킹 포인트 2>에서는 F1 팀의 수석을 맡으며, 다시 한 번 모터스포츠에 뛰어듭니다. 이런 그의 행보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한 명의 드라이버가 있습니다.
키미 라이코넨
저를 포함한 많은 F1 팬들의 '원픽' 드라이버 키미 라이코넨입니다. 2007년 월드 챔피언을 차지할 정도의 실력은 물론이고, 그리드 위의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개성으로 팬들을 즐겁게 해 주었던 드라이버입니다. 라이코넨은 1979년생 전 F1 드라이버로, 비교적 최근에 은퇴했습니다. 2021시즌 종료 이후에 말입니다. 작중에서 캐스퍼 아커만의 은퇴 시점과 같습니다.
벌써 키미 라이코넨과 캐스퍼 아커만 사이에, 실력과 은퇴 시점이라는 두 가지 공통점을 찾았습니다. 놀랍게도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키미 라이코넨의 국적은 핀란드입니다. 핀란드는 적은 인구(약 550만명)에 비해 유독 좋은 드라이버들을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데, 그런 드라이버들에게 붙는 별명이 있습니다. '플라잉 핀(Flying Finn)'입니다. 라이코넨도 이 별명을 꽤 오래 달고 있었습니다. 아커만의 별명이 어디서 모티브를 얻었는지 어렵잖게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약간 부족한 사교성(?)과 그 배경 역시 닮았습니다. 키미의 또다른 별명으로는, '아이스맨'이 있습니다. 언론이나 팀 라디오 등 발언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는 거창하거나 장황한 대답 대신, 단답에 가까운 냉정하고 과묵한 대응을 선호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젊은 시절 외모마저 차가운 북유럽 미남형이었으니, 이런 면모는 더욱 부각됐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2>에선 캐스퍼 아커만은 현역 시절 기자들에게 '차가운 사람'이라는 평을 받았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 옵니다.
이 정도면, 캐스퍼 아커만의 모티브가 키미 라이코넨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합니다. 그런데, <브레이킹 포인트2>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쐐기를 박아 버립니다. 본편 스토리 시작 전, 1편 스토리를 요약해 보여주는 '지난 이야기' 파트에서 말입니다.
<브레이킹 포인트> 1편은 모드를 시작할 당시 시작 팀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컨텐더가 아닌 5개 팀이 선택지로 제공되었는데, 그 중 특색이 부족한 알파로메오를 선택한 유저는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브레이킹 포인트2>에서 보여주는 '지난 이야기', 즉 정사 (正史)에 가장 가까운 과거 회상에서, 캐스퍼 아커만은 알파로메오 팀으로 나옵니다. 알파로메오에서 커리어 황혼기를 보내고 은퇴한 드라이버라면? 키미 라이코넨이 있습니다.
3. {브} 안드레오 코너 vs.{F1} 귄터 슈타이너
안드레오 코너
안드레오 코너는 <브레이킹 포인트2>의 배경이 되는 F1의 11번째 팀, '코너스포트'의 오너입니다. 뿐만 아니라, 팀의 수석(감독)이기도 합니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볼 수 있는 단장의 역할처럼, F1의 수석은 경영진과 실무진 사이에서 사실상 팀의 모든 부분에 관여해야 합니다. 안드레오 코너 역시 코너스포트에서 이런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팀의 최대 스폰서인 다비도프 버틀러의 간섭을 통제해야 하고, 사이가 안 좋은 드라이버들도 중재해야 합니다. 또, 걸핏하면 파업을 해버리는 차량의 신뢰성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어느 팀이든 고생을 하는 게 F1팀의 수석이지만, 작중 코너스포트는 2022시즌에 처음 참가하는 신생팀으로, 재정적 여유도 부족해 안드레오 코너는 여느 팀보다 좀더 고생하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귄터 슈타이너
넷플릭스 <본능의 질주>는 매 화 다른 팀의 에피소드를 다루기에, 공식적으로 주인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제 기준으로 주인공을 뽑는다면, 드라이버는 다니엘 리카도, 수석(감독)은 귄터 슈타이너입니다. 귄터는 F1팀 하스의 수석으로, 미케닉에서 수석까지 올라온 자수성가의 대표격 인물입니다. <본능의 질주>에서는 그가 영세한 팀 하스를 이끌고 쩐의 전쟁터인 F1을 헤쳐나가는 과정이 잘 드러납니다.
특히 초창기 시즌에서는 신생팀에 가까운 짧은 역사를 가진 하스(2016년 시즌부터 참가)가 다른 팀에 비해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장면들도 나옵니다. 차의 성능이 기대만큼 따라주지 않는 데다, 드라이버 간의 사이도 좋지 않고, 위로는 팀 오너인 진 하스에게, 아래로는 터져 나오는 문제들에 대응하지 못하는 팀원들에게 시달립니다. 이런 막막한 상황이 닥칠 때마다, 특유의 이탈리아식 억양으로 시원하게 내뱉는 'F word'가 워낙 인상적이었던지라, 국내 F1 팬들에게 '뽀킹 아저씨'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위로는 상사에게, 아래로는 역량이 달리는 팀에 시달리는 모습, 드라이버와 차량 신뢰도가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 신생팀이거나 신생팀에 가까운 짧은 역사의 팀을 맡고 있다는 점 등이 대번에 눈에 띕니다. 그나마 귄터 슈타이너는 팀의 수석으로서, 팀의 오너인 진 하스의 눈치를 보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해 보입니다. 하지만 작중 안드레오 코너는 본인이 팀 오너인데도, '쩐주'에 불과할 뿐 엄연히 외부인인 다비도프 버틀러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좀에서 좀더 불쌍해 보이긴 합니다.
4. {브} 데본 버틀러 vs.{F1} 랜스 스트롤 & 니키타 마제핀
데본 버틀러
다비도프 버틀러의 아들입니다. 1편에서는 아버지가 언급되지 않은 채, F1에서 두 번째 시즌을 맞는 젊은 드라이버로 출연합니다. 1편에서 그의 캐릭터는 해석의 여지가 적은 악역입니다.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고는 있지만, 데본 버틀러의 활약은 트랙 위보다 밑에서 주로 그려집니다. 자신보다 한 시즌 늦게 F1에 데뷔한 에이든 잭슨과 그의 팀메이트 캐스퍼 아커만 사이를 오가며 둘 사이를 이간질하는 활약입니다. 일상이나 언론 대응을 할 때도, 겸손보다는 자신감을 내비치는 편이고, 그런 면모 때문에 팬들도, 안티팬들도 많습니다. 데본은 이간질로 에이든 잭슨 팀의 성적을 망치다가, 결국 캐스퍼 아커만에게 참교육을 당하고, 그렇게 1편은 끝이 납니다.
2편에서는 '사실 그는 대부호의 아들이었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코너스포트의 드라이버로 커리어를 이어가는 모습이 조명됩니다. 여전히 실력은 죽지 않았고, 아버지 덕에 팀 내에서도 좋은 대우를 받고 있지만, 과거 자신과 날세워 대립했던 에이든 잭슨이 코너스포트로 오는 바람에 마음이 아주 편치는 않습니다. 게다가, 그 대립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진 에이든 잭슨과 한 팀이 되자, 데본과 에이든은 서로를 양보와 협력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경쟁 상대로만 인식합니다.
랜스 스트롤
랜스 스트롤은 로렌스 스트롤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이미 합리적인 비교가 성립하지만, 공통점은 그뿐만이 아닙니다. 랜스 스트롤 '부자 아버지를 둔 철없는 페이드라이버' 이미지를 떼내는 데 수 년의 시간이 걸렸고, 아직도 그 이미지에서 완벽히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페이드라이버란, 돈을 주고(pay) 드라이버가 되었다는 표현으로, 실력보다는 재정적인 이유 때문에 팀의 시트를 차지하는 드라이버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페이드라이버에겐, 그를 기용하는 조건으로 거액의 스폰서가 생긴다거나 하는 부가적인 조항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돈으로 시트를 샀다는 표현을 쓸 만큼, 페이드라이버들의 실력은 부족한 편입니다. F1 팀들이 돈을 모으는 이유는, 결국 성적을 높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드라이버의 실력이 부족해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결국 목표에 어긋나는 일이 되므로, 페이드라이버가 F1에서 오래 살아남는 일은 드뭅니다. 그 드문 일을 해낸 게 랜스 스트롤입니다. 페이드라이버로 시작했지만, 결국 무대에 어울리는 실력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2023시즌 F1경력 7년차를 맞는 랜스 스트롤은, 그보다 훨씬 오랜 경력을 가진 니코 휠켄버그도 달성하지 못한 포디움 피니쉬를 3번이나 기록했습니다. 올 시즌 애스턴 마틴을 탔으면 당연한 거 아니야? 라고 하실 지 모르지만, 애스턴마틴이 위닝카를 가진 건 올해가 처음이고, 랜스 스트롤의 포디움은 윌리엄스에서 1번, 레이싱포인트에서 2번이었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의 데본 버틀러가 페이드라이버면서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점은 랜스 스트롤을 떠올리게 하지만, 성격까지 닮지는 않았습니다. 랜스 스트롤은 데본 버틀러처럼 주목받기를 즐기지도 않고,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통제불가능한 인물도 아닙니다. 그런 성격의 페이드라이버로는, 니키타 마제핀이 있었습니다. 비록 데본 버틀러에게 약간 실례인 비교지만 말입니다.
니키타 마제핀
니키타 마제핀은 러시아 기업 '우랄켐'의 수장인 드미트리 마제핀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F2에서 거둔 마지막 시즌 성적은 5위였습니다. 돈은 많고, 성적은 F1에 오기엔 부족합니다. 그런 그가 2021시즌, 영세 F1팀 하스와 계약하자, '우랄켐'의 자회사인 '우랄칼리'가 하스의 스폰서로 들어옵니다. 전형적인 페이드라이버의 배경과 데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의 F1 데뷔에는 꽤 심한 갑론을박이 있었습니다.
F2시절부터 주행 자체가 과하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인 '위험한 드라이버'라는 평이 있던 데다, F3 시절 다른 유망주 드라이버인 캘럼 아일롯과 주먹다짐, F2시절 순위 팻말을 쳐 유키 츠노다에게 날렸던 사건 등으로 인해 성격에도 문제가 있다는 점을 공공연히 알렸기 때문입니다. 또, 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까지 받은 바 있어 이미 F1 데뷔 전부터 반쯤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F1데뷔 이후라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면 그나마 나았겠지만, 오히려 데뷔 후가 더 문제일 정도로 위험한 주행을 선보이며 모든 드라이버와 팬들의 욕을 푸짐하게 얻어먹었습니다. 그리고, 러-우 전쟁의 여파로 F1이 우랄칼리 스폰서를 거부하면서 그도 시트를 잃었습니다. 전쟁이 안 났었더라도,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을 리스크 덩어리였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데본 버틀러와 니키타 마제핀 간의 비교는 데본 버틀러에게 약간 실례입니다. 작중에서 데본 버틀러는 주목받기를 좋아하고 화법이 좀 능글맞을 뿐, 폭행이나 성추행 같은, 선을 넘는 짓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행인 건 데본 버틀러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5. {브} 에이든 잭슨 vs.{F1} 조지 러셀
에이든 잭슨
에이든 잭슨은 F2 챔피언 출신 드라이버로, 작중 2020시즌 F1에 데뷔했습니다. 1편 스토리 말미에서는 컨텐더 팀으로의 이적이 암시되며 끝나지만, <브레이킹 포인트 2>에서는 계약이 꼬였다며 신생팀 코너스포트의 드라이버가 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영국 출신의 젊은 드라이버로, 이미 모두가 그의 실력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 외 특기할 점이라면, 그리 부잣집 아들이 아니란 점입니다.
익히고 유지,보수하는 데 돈이 많이 드는 종목 특성상 F1 드라이버들은 웬만큼 유복한 집안 출신들이 많습니다. 'F1 평균'이 부잣집이기에, 루이스 해밀턴, 에스테반 오콘 등 가난한 집안 출신 드라이버들이 역으로 주목을 받곤 합니다.최근 시즌에도 아예 라티피, 마제핀, 스트롤 같은 페이드라이버가 시트를 차지할 정도이니, 말 다 했습니다. 에이든 잭슨은 그리 가난하진 않지만, 역시 부잣집은 아닌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는 설정이 있습니다. <브레이킹 포인트2>의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에이든은 F1에서 처음 받은 연봉으로 엄마가 사는 집 월세를 내줬다는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이는 <브레이킹 포인트2>의 다른 주인공들인 데본 버틀러, 캘리 메이어와 대조를 이룹니다.
조지 러셀
현재 메르세데스의 시트를 차지하고 있는 조지 러셀은 윌리엄스가 메르세데스의 리저브 팀처럼 운영되던 시절부터 촉망받는 유망주였습니다. 그도 F2 챔피언 출신이며, 20대 초반의 나이에 리그 최하위권 성능의 차량을 가지고도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습니다. 러셀은 이미 윌리엄스 시절부터 해밀턴의 후계자라는 평을 받았고, 지금은 해밀턴의 옆에서 그와 같은 차를 몰고 있습니다. 올해는 메르세데스의 성능이 중요한 고비마다 한끗 모자라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포인트 싸움에서 약간 뒤처져 있지만, 월드 챔피언에 도전할 만하다고 평가받은 포텐셜은 아직도 개화의 여지가 남아있습니다.
그의 국적도 영국입니다. 또, 러셀 역시 평범한 중산층 출신입니다. 조지 러셀과 에이든 잭슨의 공통점입니다. 사실 에이든 잭슨의 모티브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그리 명확한 편은 아닙니다. 그래서 한 가지 정황을 더 제시하자면, <브레이킹 포인트2>에서는 에이든 잭슨의 영화 출연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작중에서 영화 이름은 '쓰로틀 존(Throttle Zone)'으로 나오는데, 분노의 질주 시리즈 정도 되는 입지를 가진 영화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 출연을 거절하거나, 추진했다가 엎어지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 대신 조지 러셀이 캐스팅됩니다. 게임 제작진이 에이든과 러셀을 어느정도 연관짓고 있는 부분입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느끼셨을 테지만, <브레이킹 포인트> 세계관 내에는 모티브가 명확한 인물, 그렇지 않은 인물이 혼재합니다. 실제로 위에 소개된 인물들만큼이나 비중이 높은 작중 인물, '캘리 메이어'의 모티브 인물을 찾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단순히 여성 드라이버라고 해서 지오바나 아마티(작중 언급 있음), 타티아나 칼데론을 갖다대는 건 오히려 성별이라는 기준을 필요 이상으로 앞세우는 모습이 될 겁니다. 그 외에 F2 챔피언 출신, 자신만만한 성격 등 캐릭터의 특징을 몇 가지 뽑아낼 순 있으나, 마땅한 교집합이 보이진 않습니다. 그렇게 모티브 탐색에는 실패했지만, 실망할 일은 아닙니다. 이렇게 모티브를 탐색하는 과정에서 했던 조사, 비교 자체가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면, 오히려 모티브가 불분명해서 좋은 점도 있을 겁니다. 이 글을 통해 <브레이킹 포인트>나 F1 인물들에 대해 흥미가 동한 분들이라면,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스스로 모티브를 찾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겁니다. 혹시나 <브레이킹 포인트>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이 문서 상단에 있는 제 영상보다 더 친절한 한글화 영상을 찾기는 어려우실 테니, 위 영상으로 입문하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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